[인문사회]나치도 반했다…‘코카콜라 게이트’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코카콜라 게이트/윌리엄 레이몽 지음·이희정 옮김/280쪽·1만20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0년대 백악관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사령부를 접견했다. NASA 관계자들이 우주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소련에 서둘러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누르고 달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면 어떻게 합니까?”

케네디가 답했다. “염려할 것 없습니다. 거기 중간에 코카콜라 상표를 그리면 되죠.”

이 책엔 헛웃음이 나오는 이런 일화가 많이 등장한다. 200개국에 진출해 전 세계에서 1초에 7000병씩 팔린다는 코카콜라의 위력을 유머와 함께 소개한 것이다. 그럼 ‘OK’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영어 단어라는 코카콜라의 세계적 인기와 판매 역사를 소개한 책일까.

그렇진 않다. 프랑스 출신의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코카콜라를 좋아해 취미 삼아 콜라병, 광고 포스터,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모든 것을 모았다. 하지만 책 내용은 오히려 전설 같은 코카콜라의 명성 뒤에 감춰진 진실을 낱낱이 파헤쳤다.

저자는 코카콜라 본사의 취재 방해를 뚫은 방대한 기록 수집을 통해, 저자의 표현처럼 “코카콜라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으나 외부인이 알아서는 결코 안 되는 코카콜라의 감춰진 또 다른 역사”를 촘촘히 재구성한 열정이 놀랍다. 덕분에 코카콜라의 전설과 진실이 드러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코카콜라의 숨은 진실은 코카콜라와 독일 나치의 긴밀한 협력 관계. 나치시대에 코카콜라가 독일에서 어찌나 인기가 있었던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독일 병사들이 벽에 붙은 코카콜라 광고를 보고 독일 음료수가 미국에도 있는 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코카콜라는 나치에 협력한 독일 지사장 막스 카이트를 내세워 미국색을 가리고 나치 지도자들이 좋아하는 음료라고 선전했다. 독일 코카콜라의 노동자 중 상당수가 독일에 끌려온 전쟁 포로였다. 이들의 노동력으로 1942∼1945년 독일 코카콜라는 1억 병을 생산했다. 1939년 이후 독일과의 통상금지 조치를 뚫기 위해 독일로 수출한 콜라 원료를 회계장부에 분실로 처리했다. 원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 코카콜라가 발명해낸 것이 ‘환타’라니, 환타는 ‘나치용 콜라’였던 셈이다.

코카콜라의 성공은 미국 정치권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면 더 높은 봉급을 제안해 회사로 끌어들였다”. 지미 카터는 대통령 선거 기간에 코카콜라에서 제공한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녔고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코카콜라는 중국 소련 이집트 예멘 시장까지 진출했다.

상표의 ‘코카’가 코카인과 관계없다는 코카콜라의 말과 달리 처음 코카콜라가 개발됐을 때 실제로 코카인 성분이 포함됐으며, 마약 중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코카 잎을 사용하되 코카인 성분을 뺀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역사가 가득하다.

문장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상황을 “코카콜라의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성스러운 음료수를 손에 든 ‘콜라 선교사’들을 파견해야 할 세계에 전쟁이 시작되려 하는 것이었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코카콜라는 독보적이며, 유일한 적은 자신의 그늘이다. 코카콜라가 오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보면 약점투성이다. 자칫 불똥이 튀어 큰불로 번질까 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기업으로 인정받지만 투명하지 못한 경영으로 구설에 오르는 한국의 일부 대기업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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