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청초하고 요염한 향기…사케의 유혹

  • 입력 2007년 12월 14일 03시 02분


■사케 & 요리

《일본 청주 사케(酒)가 그리운 시절이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국물 요리와 함께 따뜻하게 데워진 사케는 겨울 찬바람의 매서움을 덜어 준다. 눈이라도 소복이 쌓인 날이면 옷깃을 여민 채 선술집 미닫이문을 열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다방 커피에 흡족해하던 입맛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뽑은 커피를 찾듯, 점점 섬세해지는 입맛은 사케를 즐기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날 듯 말 듯한 미미한 사케의 향을 쫓아 음식까지 맞춰 즐기는 것이 유행의 앞자락이다. 서울 강남의 거리에 사케 바(Bar)가 잇달아 문을 열더니 사케를 100여 종 이상 갖춘 호텔 일식당까지 새로 생겼다. 음식에 어울리는 사케를 추천하고 사케를 보관 관리하는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사케 어드바이저’도 등장했다. 와인 소믈리에와 다를 바 없다.

사케는 알코올 도수(통상 15∼16도)가 낮아 와인처럼 오래 대화를 나누며 마시기에 적당하다. 프랑스 와인처럼 산지와 제조법에 따른 브랜드가 많아 술 제조법 자체가 ‘안주거리’가 되기도 한다.

사케는 원래 술을 총칭하는 단어지만 쌀로 빚은 일본 청주를 지칭하는 뜻으로 통용된다. 일본에서는 ‘니혼슈(日本酒)’라고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한때 정종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이는 수천 가지나 되는 사케의 한 브랜드일 뿐이다. 일제시대 국내에서 많이 팔렸던 사케가 정종(正宗·마사무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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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의 종류

사케를 정미율(쌀의 표피를 깎아 내고 남은 비율)에 따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구분법이다.

쌀의 표층부와 씨눈에는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질 등이 많다. 누룩과 곰팡이의 증식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너무 많으면 효모의 활동을 지나치게 활성화해 술 맛을 떨어뜨린다. 사케가 은은하고 깨끗한 향을 내려면 정미율이 낮아야 좋다. 사케용 쌀은 밥 짓는 쌀과는 다른 품종이다.

정미율 50% 이하인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은 ‘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釀)’급이다. 쌀알의 35%만으로 만드는 술도 있다. 50∼60%는 ‘준마이긴조(純米吟釀)’, 60∼70%는 ‘준마이슈(純米酒)’로 불린다. 향은 정미율이 낮을수록 은은하고, 높을수록 진하다.

여기에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정미율 50% 이하는 ‘다이긴조(大吟釀)’, 50∼60%는 ‘긴조(吟釀)’, 60∼70%는 ‘혼죠조(本釀造)’로 불린다. 양조 알코올을 첨가했다고 해서 저급한 술은 아니다. 오히려 맛이 부드러워지고 깔끔해진다.

○ 시음법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구워 넣은 뜨거운 사케(히레사케)만 즐겨 온 사람은 최근 사케 음용법에 낯설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올해 10월 리노베이션을 통해 120여 종의 사케를 구비해 사케 일식당으로 변모한 서울 롯데호텔의 모모야마는 사케를 차갑게도 내놓는다. 미묘한 향과 맛을 즐기는 데 낮은 온도가 더 어울리는 사케가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즐길 때에도 뜨겁다고 느낄 정도가 아닌 섭씨 35∼40도로 데워서 내놓는다.

사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일본에서 ‘사케’를 배우고 온 사케 어드바이저가 4명 있다. 김미정 지배인도 그중 한 사람이다. 김 지배인은 “사케도 와인처럼 마시기 전 코로 향을 먼저 즐긴다”면서 “입에 머금었을 때 입술을 다문 뒤 코로 숨을 내쉬면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향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과 맛이 강하지 않은 사케를 시음하는 방법이다.

○ 와인처럼 음식에 맞추다

풍미가 약한 요리에는 은은한 맛의 사케가, 진한 맛이 나는 요리에는 향이 진한 사케가 어울린다는 게 원칙이다.

회에는 깨끗하고 드라이한 맛이 나는 다이긴조나 긴조, 준마이다이긴조, 준마이긴조 등이 좋다. 조림이나 구이에는 준마이슈나 혼죠조급이 추천된다.

기름이 많은 참치 뱃살 회에는 알코올 도수가 17∼18도인 사케를 추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정미율이 낮은 술이 비싸다. 이런 사케는 섭씨 4∼5도로 만들어 차게 즐기는 게 좋다고 한다.

정미율이 낮은 쌀로 만든 사케가 반드시 비싼 술은 아니다. 숙성기간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아예 등급 표시를 하지 않거나 자기들만의 표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사케도 와인처럼 단맛과 드라이한 맛으로 구분한다. 병의 레이블에 ‘+’와 ‘-’가 붙은 숫자로 표시된다. -60은 달콤한 맛이 강한 디저트용 사케다. 통상 +3에서 +5 사이가 드라이한 것이 많다.

국내에는 준마이다이긴조급의 오토코야마(男山)와 준마이긴조급의 핫카이산(八海山) 등이 제법 알려져 있다. 사과나 삼나무 향 등이 나는 사케도 있다. 강한 풍미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향이 짙은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촬영 : 박영대 기자

회 복어국 어묵탕, 사케와 궁합이 딱

사케와 일식 요리를 항상 접하는 호텔 일식당의 주방장들은 어떤 사케를 무슨 요리와 함께 즐길까. 사케와 함께 즐기는 요리로는 맑은 국과 회, 구이, 전골, 초밥, 닭고기 샐러드 등 다양했다.

르네상스서울호텔 김보성(42) 주방장은 복어국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복어국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구 맑은 탕(지리)을 애용한다고 했다.

해물모듬냄비를 추천한 사람은 서울 롯데호텔 안중호(50) 조리장이었다. 맛이 담백하고 집에서 만들기도 쉽다는 것이 추천 이유였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강부식(41) 주방장은 역시 집에서 만들기 쉬운 스키야키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정재천(40) 주방장은 회, 도미찜, 어묵탕을 추천했다.

그랜드힐튼호텔 장철호(53) 과장은 소내장 전골 같은 독특한 요리와 사케를 함께 즐겼다.

즐겨 마시는 사케는 사람마다 달랐다. 신라호텔 이태영(41) 과장은 ‘오쿠노마쓰’를 추천했다. 은은한 과일향에 자연스러운 단맛이 좋으며 뒷맛이 깔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의 이강욱(46) 조리장은 ‘쿠보다 만주’를 맛이 부드러워 사케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마시기 좋은 술이라고 권했고 ‘핫카이산’은 사케 특유의 강한 풍미 덕분에 좋아한다고 밝혔다.

백화수복을 즐겨 마시는 서울프라자호텔 임홍식(47) 주방장은 사케를 계란과 함께 즐기는 법을 소개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잔에 계란 노른자와 설탕 1큰술을 넣고 사케를 부은 후 잘 저어 마시면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권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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