漁(어)는 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豈(기)는 흔히 반어를 나타내어 어찌 또는 설마라는 말로 풀이된다. 獲得(획득)은 얻는다는 뜻의 글자가 중복됐다. 明年(명년)은 다음 해 또는 내년을 가리킨다. 竭澤而漁(갈택이어)는 후일에 대한 고려 없이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는 모습을 비유한다.
모든 일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야지 단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뒤이어 ‘덤불을 태워 사냥한다면 설마 더 잡지 못하겠느냐만, 그러면 내년에는 잡을 짐승이 없다’고 했다. 역시 당장의 이익보다 장래를 고려하라는 말이다. 동시에 눈앞의 이익만을 꾀해 백성을 너무 가혹하게 몰면 장래가 없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 말 바로 뒤에 이어진다. ‘속임수는 지금은 잠시 통하지만 장래에 다시 반복할 수 없으니 長策(장책)이 아니다.’ 장래를 고려하라는 말이지만 동시에 속임수가 잠시는 통한다는 점도 암시한다. 오늘날에도 속임수는 횡행한다. 그 폐해에서 벗어나려면 속임수는 잘해야 순간뿐이며 결국 장래를 철저히 망치는 일임을 누구나 절실하게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속임수는 반드시 폭로하고 책임을 철저히 추궁해야 한다. ‘呂氏春秋(여씨춘추)’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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