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시인이 찍은 사진엔 詩가 흐른다

  • 입력 2007년 12월 14일 03시 02분


소설 ‘리진’의 책날개에 실린 신경숙(사진) 씨의 사진은 화제였다. 두 손을 모으고 조금 낮은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사진은 대개 연출된 것이어서 유명 인사들의 표정은 긴장돼 있다. 그런데 신 씨의 사진은 자연스럽고 고왔다. 사진 아래 촬영자 이름은 시인이자 평론가인 남진우 씨. 작가의 남편이다. 책이 나왔을 때 신경숙 씨는 “(남편이) 한참 카메라에 빠져 있어 찍힌 것뿐”이라며 웃음을 지었지만, 남 씨의 이름을 확인한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친밀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얼굴’이었던 것.

남 씨의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에 실린 시 ‘오후 세 시의 추억’의 몇 구절. ‘삭아가는 폐선 옆에 서서/멀리 난바다에 부서지는 햇살 바라보며 찍은/흑백사진//저기 홀로 선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내 젊음은 저렇듯 끝없이 돌고 돌다가/점이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훨씬 잘 찍는 사람이 많다”고 남 씨는 낮춰 말한다. 사진 잘 찍기로 유명한 문인이 많아서다. 예를 들면 시인 이병률 씨가 그렇다. “스무 살에 타자기와 카메라에 매혹됐고, 어떤 운명 같은 것에 이끌린 것 같다”고 이 씨는 말한다. 과연 그 두 사물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줬다. 시집도 스테디셀러지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을 함께 실은 산문집 ‘끌림’은 출간 2년여 만에 10만 부가 나갔다. 필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뭐든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 세상에서 “구걸하는 사람, 길에서 자고 있는 홈리스는 안 찍는다”는 기준이 있다는 그. 문 틈새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화분 같은, 시인의 눈으로 포착한 장면뿐 아니라, 카메라를 든 이국 사내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년,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 사람들의 지치고도 편안한 얼굴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었나/손 닿지 않는 꽃처럼 없는 듯 살다 가지만/눈에서 멀어지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같아/생애는 상실의 필름 한 롤이었나/구불구불 뱀처럼 지나가지/그 쓸쓸한 필름 한 롤.’(신현림 씨의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 중 시 ‘어디에도 없는 사람’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실은 에세이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를 최근 선보인 신현림 씨. 그는 개인 사진전을 두 번이나 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화가가 되고 싶어 4수를 했지만 원하던 미대는 갈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이 삭지 않던 차 우연히 사진을 만나 빠져들게 된다. “사진을 배우려고 대학원에 갔는데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사진 기술은 6개월이면 배우지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인생 전체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시를 알아야 하고,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마음이 시심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사진 잘 찍기로 이름 난 문인 중 시인이 많다. 시와 사진 모두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언어의 구조물 또는 사각의 프레임이라는 형식에 담는 작업이어서 닮았다는 것. 여기 또 한 사람의 시인, 김소연 씨의 블로그(catjuice.egloos.com) 속 사진도 문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아름다운 풍경도 그렇지만 그간 보아온 문인들을 사진으로 다시 만나니 반갑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모습이었나? 무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강정 씨, 뭔가 하려는 말이 입에 머문 천운영 씨, 휴대전화를 확인하면서 살짝 웃음 짓는 윤대녕 씨…. 김 씨의 카메라 속에서 작가들은 ‘설정사진’에선 보지 못했던 느긋한 포즈를, 환한 미소를 짓는다. 친밀한 문우 앞이어서 가능한 모습들이다. 작가들의 ‘다른’ 얼굴을 ‘다른’ 사진으로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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