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눕시다… 그들은 더 춥습니다…‘Giving’

  • 입력 2007년 12월 15일 03시 01분


◇Giving/빌 클린턴 지음·김태훈 옮김/281쪽·1만2000원·물푸레

한때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죽을 때 사회에 돌려주고 가는 미국 지도층 인사들의 정신을 배우자면서. 그러나 그동안 김밥집 할머니나 생선가게 할머니가 티끌 모아 만든 태산 같은 재산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지도층 인사가 이를 솔선수범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줄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대기업 총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벌금조의 기부금을 내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한창 돌 때 존 롤스의 ‘정의론’이란 책이 한국에 들어왔다. 현대 자유주의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롤스는 그 책에서 재산의 환원 차원을 넘어 타고난 재능도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사회 공동의 자산이므로 그를 통해 번 돈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노력해 번 돈의 사회 환원도 이뤄지지 않는 마당에 타고난 재능까지 사회적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먹혀들 리 없었다. 이상적, 낭만적이란 반응부터 사회주의적이란 비판이 주류였다.

기자도 그랬다. 9세 때 미국으로 이민가 10세에 뉴욕 필 콩쿠르 최연소 우승, 11세에 미국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IMG와 최연소 아티스트로 계약을 한 피아노 영재 김지용(15) 군이 재능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자선재단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초등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뉴저지에서 세탁소를 하는 아버지는 “네 재능은 네 것만이 아니니 이웃을 위해 쓰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롤스의 ‘정의론’에 담긴 주장이다. 지용 군은 재능의 사회 환원을 미리 약속한 셈이다.

한국에서 냉소의 대상이 미국에선 현실로 이뤄진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쓴 이 책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이제 부와 재능뿐 아니라 명성과 권력도 사회적 환원의 대상이다.

그는 전직 미국 대통령이란 명성과 권위를 사회봉사와 자선활동에 쓰고 있다. 그가 세운 클린턴재단은 2002년부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구상을 통해 44개국에 저가 치료약과 진단 장비를 제공하고 있고, 2005년부터 매년 수백 명의 정부 지도자, 자선사업가, 경영자, 비정부기구 활동가 수백 명이 참여하는 글로벌구상을 통해 지금까지 100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모아 지구 온난화 대책과 빈민 구호, 인류 화합에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다양한 나눔의 실천가들을 소개한다. 거기엔 35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해 자선재단을 세운 빌 게이츠 부부와 그 재단에 300억 달러를 기부한 워런 버핏처럼 어마어마한 부를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75년간 세탁 일을 하며 모은 15만 달러를 흑인 학생의 장학금으로 내놓은 87세의 할머니처럼 눈물겨운 사연도 있다.

폴 파머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버스에서 살 만큼 가난했지만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한 뒤 해마다 4개월만 병원에서 일해 생계비를 벌고 아이티와 르완다의 결핵과 에이즈를 퇴치할 혁신적 공중보건의료소를 세우는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학습 부진 학생이 가장 많은 지역 공립학교를 지원해 대학 진학률을 87%로 올려놓은 테니스 스타 앤드리 애거시와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5만7000m² 규모의 학습센터를 세워 골프 영재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영재도 키우고 있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사연도 빼놓을 수 없다.

1944년부터 기증받은 가축의 첫 번째 새끼를 다른 가난한 이웃에게 다시 기증하도록 해 결국 128개국 4500만 명에게 혜택을 준 헤퍼 인터내셔널처럼 나눔의 놀라운 전염력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도 있다.

수많은 사례 중에는 아프리카 질병 퇴치 운동과 사랑의 집짓기 운동, 공정선거 감시 운동을 펼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선거에서 남의 바둑에 훈수만 두려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어떤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