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내게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이전의 전경린(45·사진) 씨는 레몬을 던지는 얘기를 소설로 썼지만, 이제 그는 그 레몬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 안다.
그가 새 장편 ‘엄마의 집’을 냈다. 마침 ‘가족’이 화두인 때다. ‘싱글맘’ ‘혼혈 자녀’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즈음이다. ‘엄마의 집’도 이렇게 달라진 가족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 방향을 잡고 출발한다.
“우리 엄만 전형적인 한국 여자 타입이야.” “선배 엄마도 가출했어요?”
깔끔하고 당혹스러운 도입부. 여대생들의 대화를 통해 작가는 오늘의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일러 준다. 전 씨의 많은 소설에서 그렇듯, ‘엄마의 집’의 엄마도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갔다. 가출하기 전 엄마는 “유리로 만든 발레 인형 같았다. 유리로 만든 발레 인형은 발목에 금이 가서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언제까지나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집 하나를 갖기 위해 밤낮으로 돈벌이를 한 끝에 엄마는 집을 갖게 됐다. 스무 살 대학생 딸 호은은 그제야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었다. 엄마가 가출한 원인이 된 아빠는 ‘지난 시대의 컴퓨터 용량같이 처량한’ 386세대, ‘진실을 택하지도 못했지만 생존을 택하지도 못한’ 사내다. 그런 아빠가 호은에게 승지를 맡기고 사라져버린다. 승지는 아빠가 엄마와 이혼한 뒤 재혼한 여자의 딸이다. ‘전남편의 처의 딸’까지 떠맡게 되자 엄마는 호은과 승지를 데리고 아빠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길에서 그들이 확인하는 것은 시대에 대해 젊음을 바쳤던 이들의 깊은 피로와 패배감이다.
‘엄마의 집’에 돌아온 가족은 사회의 기준으로 보기엔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혼한 엄마는 애인이 있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 딸 호은은 동성 후배에게 사랑을 느끼고, 자신이 양성애자가 아닐까 괴로워한다. 엄마와도 호은과도, ‘혈연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린 승지는 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전 씨는 이 이상한 가족을 담담하고 평온하게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통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족들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음식 냄새가 가득하고 부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한” 집에서 초경을 시작한 승지에게 엄마는 “이제는 너 자신을 더 잘 보호해야 한다”고 말해 준다. 호은은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성 성체성 문제를 고민하면서 “자기 생긴 대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엄마가 터득했던 삶의 지침을 받아들인다.
혼자만의 상처로 괴로워했던 전 씨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엄마의 집’에서 작가는 다른 사람과의 화해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나와 내 아이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순정한 사랑을 증명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썼다”고 작가는 밝힌다. 전 씨 소설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나온 공지영 씨의 ‘즐거운 나의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2005년 구상해 조각조각 썼다”며 ‘영향 없음’을 밝혔다. 그만큼 ‘가족’이 시대의 예민한 과제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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