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사학자인 강덕상 시가현립대 명예교수는 일본 국립대에서 외국인으로 첫 정교수가 된 인물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수집해 온 일본정부의 비밀문서, 군사기록, 정부 고위관료의 수기, 일반시민 경찰 군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관동대지진 문제를 비롯한 일제 침략기를 집중 연구해온 학자다.
이 책은 그런 그가 현역 교수직을 은퇴한 2002년 일본에서 출간됐다. 전 3권으로 기획된 책 중 첫 권이었다. 그만큼 여운형에 대한 연구를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가장 ‘나아종의 것’으로 준비해 왔다는 말이다.
강 교수는 방대한 일본의 독립운동 사료 중에서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인물로 이동휘, 홍범도, 안창호, 여운형을 꼽았다.
그런데 여운형만이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조선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철저히 잊혀진 여운형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칠순을 넘긴 노학자의 펜을 움직였다.
기존 여운형 관련 저술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는 자전적 진술이나 주변 사람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료에 근거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1886년 경기 양평의 유복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인물이 어떻게 기독교인, 사회주의 혁명가, 스포츠맨, 노련한 외교가로 변신해 가는지를 꼼꼼히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승만은 자세히 파고들수록 싫어지는 인물이지만 여운형은 다양한 프리즘으로 연구자를 홀딱 반하게 하는 인물이다. 여운형은 아버지의 3년상을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의병전쟁 참전을 거부할 정도로 고지식한 면모가 있지만 기독교에 심취해 3년상이 끝나는 날 집안의 노비문서를 태워버리고 봉건적 인습과 작별하는 결단력을 보인다. 또한 기독교운동이 친일화 경향을 보이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다시 사회주의에 심취한다.
그는 당시 독립운동가 중에서 국제정세에 가장 정통해 신한청년단을 이끌며 사실상 상하이임시정부의 코디네이터로 활약한다. 일본 하라 다카시 내각이 3·1운동의 여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일본으로 초청했으나 조선 독립을 주장하는 그의 당당한 논리에 밀려 의회해산의 위기까지 몰렸던 점도 그렇다. 일본이 여운형을 얼마나 높게 평가했고 두려워했는지를 보여 주는 신문보도와 비망록을 읽노라면 어디를 가나 ‘유쾌한 여운형’의 풍모를 접할 수 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면면에서도 진정한 ‘마당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그 매력을 “49%는 상대에게 주어도 51%는 자기를 위해 남기는 끈기를 발휘하는 지도자”라고 압축해 설명한다.
내년 하반기 출간 예정인 2권은 1920년 이후 상하이임정에서의 활약을 다루고, 아직 일본에서도 미출간된 3권은 이승만과 김일성과 대비한 여운형의 지도력을 조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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