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책 수집가이자 거래업자, 문학박사인 저자가 명저들의 초판본이나 최상급 저작본과 그 거래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BBC 라디오 프로그램 ‘레어 피플, 레어 북스(Rare People, Rare Books)’에 소개된 내용을 가다듬었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영문학을 강의하던 저자는 희귀본을 접했을 때의 떨림과 그 거래 수입에 매료돼 대학 강사직을 던지고 ‘업자(runner)’가 됐다. T S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등 그가 강의에서 다뤘던 현대 작가들의 책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이 책에는 세계적 명작들의 뒷이야기가 즐비하다. 코넬대 강사였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는 40대 중년 남자가 12세 소녀에게 성적으로 사로잡힌다는 도발적 줄거리 때문에 미국 출판사들로부터 줄줄이 거절당했다. 책은 돌고 돈 끝에 자칭 ‘포르노 사업가’인 모리스 지로디아스가 운영하는 파리의 올랭피아 출판사에서 1955년 출간됐고 뒤이어 미국에서 히트작이 됐다.
D H 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에도 완성되기까지 작가와 어머니, 작가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벌였던 여성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로런스는 어머니에게 휘둘리면서 ‘아들과 연인’을 끝맺지 못하다가, 프리다라는 여성을 만나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 프리다는 로런스가 각별히 생각했던 교수의 아내로, 이들은 만난 지 6주 만에 도피 여행을 떠난다. 로런스의 손에는 ‘아들과 연인’의 미완성 원고가 들려 있었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직접 활자를 만져 제작한 책도 있다. 1919년 T S 엘리엇의 ‘포임(Poem)’ 초판본이 그것. 버지니아 부부는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했는데, 이 출판사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출판을 의뢰받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버지니아가 일기에 쓴 대로 “한 페이지 틀을 잡는 데 1시간 15분이 걸렸기” 때문이다. ‘율리시스’ 원고는 파리의 실비아 비치로 넘어갔고, 그 대신 버지니아는 젊고 수줍은 시인 엘리엇의 ‘포임’을 냈다.
귀한 책의 거래 가격도 흥미롭다. ‘포임’의 초판은 1만8000달러에 이른다. ‘롤리타’의 프랑스판 원본은 1992년 2만3500달러에 저자가 산 뒤 한 수집가에게 되팔았는데, 10년 뒤 경매에선 26만4000달러를 기록했다. 그 경매장에 있었던 저자는 속이 쓰릴 수밖에.
이 밖에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도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스물세 번째 출판사에서 겨우 발간됐으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우여곡절 끝에 초판을 500부만 찍었다는 일화 등을 통해 저자는 “명작은 책 이상의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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