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위대한 비즈니스 레터/에릭 브룬 엮음·윤미나 옮김/288쪽·1만2000원·비즈니스맵
편지는 독특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우편은 더 그렇다. 전송시간이 길고 응답은 느린 데다 없을 수도 있다. 얼굴이나 목소리 가늠이 안 돼 의사 전달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편지는, 언제나 강하다. “세기를 아우르는 독창성의 보고이자 성취의 기록”(에릭 브룬)일 때도 있다. 무엇보다 받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단 한 줄의…’의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 현재 컨설팅 회사에 근무 중이다. 동아일보에 켄트 김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만화 ‘하버드맨’도 1년여 연재했다.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세상을 가득 채울 듯한 열정으로 한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이름 하여 ‘호랑이 깨우기’.
“내 안에 잠든 꿈 이상 정열이란 호랑이를 다시 깨워야 했다. 두 발로 스승을 찾아나서 가르침을 듣고 싶었다. 그들이 가난한 하버드 학생을 만나주진 않아도 짧은 답장은 써주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세계 명사에게 편지 보내기였다. 젊은이가 ‘21세기를 맞을 조언’을 구했다. 무작정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로 우표 값 29센트를 투자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정치인, 예술가…. 그런데 놀랍게도,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책에 실린 105명의 답장은 다양하다. ‘크게 생각하라(Think big)’는 단답식부터 한 장을 가득 채운 충고도 있었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동시에 돼라’라는 묘한 화두를 던졌다. 조지 피셔 코닥그룹 회장은 영어교육 회사를 운영하는 아들에게 저자를 소개해 만화 일감을 주기도 했다.
프로젝트가 모두 성공한 건 아니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등 많은 이가 참여를 거절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름 없는 동양계 학생의 편지에 모두 ‘응답’은 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편지해도 답변하지 않는 게 공식 정책’이란 답신을 보낸다. 그리고 모두 말한다. ‘편지 보내 줘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빕니다.’ 그게 형식적이라고 할지라도.
개인 답장을 모은 ‘단 한 줄의…’에 비해 ‘세상을 움직인…’은 좀 더 사회적인 편지다. 세계를 호령한 거물들의 공적 사적인 편지 메모를 모았다. 경제지 ‘포브스’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녔다고 판단해 연재한 글들이다.
책 속의 편지들에는 세상이 담겨 있다. 마리 퀴리는 취리히 연방공과대의 한 학자를 ‘가장 독창적인 지성의 소유자’라고 추천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한 재단사는 직접 만든 바지의 특허비 68달러를 내주면 판매권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대상이 ‘리바이스’의 창시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다. 다들 비웃지만 ‘무선으로 집안에 음악을 가져오겠다’라는 호언. 상업용 라디오의 선구자, 데이비드 사르노프의 편지다.
하지만 편지가 보여 주는 세상은 때론 섬뜩하다. 잭 웰치는 정리 해고된 직원의 아내에게 ‘좀 더 빨리 정신을 못 차려 죄송하다’라고 답신하지만 다시 채용하진 않는다. 워런 버핏이 워싱턴포스트 주식을 매입하며 쓴 ‘수표를 쓰는 건 그냥 하는 말과 확신을 구분한다’라는 편지는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의 질감이 드러난다.
편지의 힘은 크다. ‘단 한 줄의…’의 저자는 “그들의 편지는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술회했다. ‘세상을 움직인…’은 역사적인 의미까지 거론한다. 거창할지언정 허풍스럽지 않은 이유. 편지에는 인간이 담겼기 때문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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