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다시 찾는 것들이 있다.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 찰스 디킨스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 TV에 100번은 족히 방영되었을 것 같은 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 때만 되면 백화점에 울려 퍼지는 머라이어 캐리의 들뜬 캐럴, 최근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영화 ‘러브 액추얼리’. 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참 ‘징하게도’ 우려먹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신선한 메뉴를 하나 추가하려고 한다. 재능 넘치는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장편 ‘어바웃 어 보이’. 많은 영화 애호가의 ‘톱 10’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다.
소설은 어른 같은 아이 마커스와 아이 같은 어른 윌의 이야기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마커스는 엄마와 둘이서 산다. 엄마 피오나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아들에게도 강요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독특한 취향은 무시당하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다르다.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윌은 멀쩡한 성인 남자지만 직업도 없이 산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지겹도록 들려오는 캐럴 ‘산타의 슈퍼 썰매’를 작곡한 아버지 덕이다. 아버지가 남긴 캐럴의 저작권료로 편안하게 살지만 그는 자신을 먹여 살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혐오한다. 윌과 마커스는 때로는 싸우면서 때로는 한 편이 되어 지낸다. ‘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둘은 예상치 못한 기쁨과 위안을 주며 서로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 한데 어울리기 난감한 사람들이 모여 앉는다. 마커스와 그의 엄마 피오나. 그녀의 전 남편 클라이브(마커스의 아빠)와 애인 린제이, 그리고 린제이의 어머니. 마커스가 초대한 손님인 윌과 윌이 꼬시려고 했던 이혼녀(그녀는 마커스 엄마의 친구 자격으로 왔다)와 그녀의 딸까지. 그들이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궁금하지 않은가?
딱딱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은 해체된 가족 구성원과 사회 부적응자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도 빠른 속도로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고, 남다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1994년 런던이 배경인 이 소설은 2007년의 서울에서도 진정성을 가진다.
닉 혼비의 재치와 여유로움. 그 위에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이 양념된 메뉴. 이번 크리스마스의 특선 메뉴로 ‘어바웃 어 보이’를 추천한다.
이재익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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