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예수 오신 것, 가장 장엄한 사건

  • 입력 2007년 12월 20일 02시 58분


올해 개봉된 영화 ‘밀양’은 심심찮은 이야깃거리가 됐다. 감독은 “사람들은 ‘밀양’이 기독교를 비난한 것 같다고 말하지만 나는 인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 속에서 인간이 겪는 지난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대응한 기독교의 민망한 모습에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탄절은 이제 종교적 의미가 많이 퇴색된 문화적 절기가 됐다. 하지만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역사적 사건이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왔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납득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를 죄와 고난으로 망가진 세상에 ‘사람’으로 보냈으며 십자가라는 독특한 죽음을 통하여 옛 시대를 마감한 뒤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첫 존재로 살아나게 하였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수의 부활로 열어 놓은 새로운 창조의 영역(성경에선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이라고 한다)으로 들어올 것을 초청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역사의 중심이며 분수령이다.

새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기 시작한 참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기를 소원한다. 예수가 지상 생애에서 보여 준 조건 없는 사랑, 자신을 내주며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지평 너머, 개인적으로는 육체의 죽음 너머에서 손짓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갖고 용기 있고 관대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역사적 소명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역사의 의미와 목표를 밝혀 주는 빛이다. 개인의 인생과 역사의 의미를 알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 가장 나다운 삶, 존재의 궁극적 가치를 드러내는 삶이 가능하다.

개인도 집단도 역사의 의미를 알지 못할 때 현실의 쾌락과 탐욕 속에 표류하게 된다. 기독교가 인간 역사와 동떨어진 종말론에 머물 때 교회는 사회에 아무런 선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천박한 종교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화 ‘밀양’에선 아들이 살해당한 여인이 나온다. 예수는 여인이 겪는 고통을 함께 지고 여인과 같은 사람을 구원해 사랑과 자유와 생명으로 충만한 시대로 이끌기 위해 세상에 왔다. 그는 진정 역사의 중심이며 동력이다.

손희영 미국 플로리다 게인스빌 한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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