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10>엄마의 크리스마스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8분


《난 알았다. 아이를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매일같이 듣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 평화롭게 놔두어야 한다. 전쟁터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런 걱정도 말고,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귀 기울이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 파리에 사는 이혼녀 누크가 아들 으제니오와 단둘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이다. 엄마, 크리스마스는 어디서 보낼 거야, 응? 엄만 그렇게 똑똑하다는 사람이, 내일이 바로 크리스마스인데도 어딜 갈 건지조차 생각을 못해놨단 말야? 누가 우릴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도 없고, 불쌍한 나를 위한 벽난로도 없고. 거봐, 엄마, 도대체 이혼은 왜 한 거야?

누크 같은 엄마에게 명절이나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자기 삶을 X선 촬영처럼 투시당하는 날이다. ‘엄마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외로운 닭처럼 허둥대고 냉소적이고 영악한 아들은 엄마가 감상에 빠질 틈이 없도록 계속해서 다음 계획을 채근하는 모습이 전투를 방불케 한다. 누크는 아들의 격려에 힘입어 선물을 마련하고 트리를 사서 장식하고 물놀이 낙원인 아쿠아 볼르바르까지 가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들과 물놀이 나온 자기 신세를 절감하게 되고 전철 속 같은 공기, 창백한 전등 빛, 소독약 때문에 구토가 나는 인공낙원에 환멸을 느끼며 지쳐 간다.

저녁 식탁에 앉은 아들이 또 묻는다. 언제 와, 손님들은?

엄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미처 손님 생각을 못한 것이다. 시간을 죽이는 데는 천재인 재기 넘치는 모자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버겁다. 누크는 아들과의 조용하면서도 맹렬한 삶을 힘겨워하면서도 행복해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누크가 일터와 집만 오가며 아들만 끼고 사는 것을 비정상적이라고 간섭하고 전 남편은 누크가 여리고 비현실적이어서 아이를 키우기엔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누크와 아들이 생활을 예술화하고 세상의 잡동사니를 시로 만들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풍부하게 삶을 경험하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둘이 얼마나 많이 웃고 자주 삐치고 마음속으로 우는지, 그것이 얼마나 충실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도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영화와 소설들이 색다른 가족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런 모색은 우리 사회 속의 새 삶을 발견하고 삶의 새 양식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치와 건강성과 긍정성을 통찰하고 새 감수성과 감정을 선보여 세계를 더 풍요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정상적이라는 기준, 완성적이라는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더 많이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더 깊이 진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바로 지금을 살고 있다. 힘겹고도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끝나자 아들 으제니오는 아빠의 집으로 떠나간다. 누크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될까? 예민하고 진지하고 성실한 누크는 그 존재조건대로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강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영혼은 하늘처럼 맑고 입술에는 미소를 띠고.

전경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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