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면 거지 관상도 재상 될 수 있죠”

  • 입력 2007년 12월 26일 02시 59분


만화 ‘꼴’ 연재하는 허영만 화백

“관상 배우는 만화주인공으로 등장

데뷔한지 34년… 13만장 넘게 그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허영만 화백의 화실. 문하생들이 일하고 있는 거실을 지나 허 화백의 방으로 들어가니 자료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책상이 둘이다. 하나는 현재 본보에 연재하고 있는 ‘식객’을 그리기 위한 책상, 다른 하나는 내년 1월 1일부터 본보 ‘동아경제’ 섹션에 연재할 관상에 대한 만화 ‘꼴’을 위한 책상이다. 자료가 하도 많아 뒤섞일까 봐 책상까지 따로 놓은 것이다. 벽에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 낸 기사들이 가득 붙어 있다. 그 가운데 작은 종이에 그가 써 붙여 놓은 글에 눈길이 갔다. ‘나 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

“사람이 가끔 오만해질 수가 있잖소.”

그는 ‘꼴’을 그리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3∼4시간씩 관상학의 대가인 신기원 씨와 함께 관상을 공부했다.

“캐릭터를 만들 때 나쁜 사람을 그리려고 범죄자들의 인상도 참고했지만 한계가 있었죠. 그러다 보니 궁금해졌어요. 부자 상으로 태어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부자로 살 수 있을까? 성형을 하면 관상이 진짜 바뀔까?”

공부를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관상은 변하고 운도 변한다는 것. 타고난 관상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변한다는 얘기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첫째는 부자의 상이고 둘째는 거지 상이더래요. 둘째는 거지 상이라 하니까 집을 나갔어요. 몇 년이 흘러 돌아왔는데 재상의 얼굴로 바뀌었다네. 밥 굶을 팔자인 걸 알고 열심히 일해서. 팔자만 믿은 큰아들은 방탕한 생활로 거지가 되고.”

그렇다면 한국 최고 만화가로 손꼽히는 그의 관상은 어떨까. 그는 그저 “이마가 좋고 코도 좋다고 한다”며 허허 웃었다.

‘꼴’을 준비하면서 그에겐 버릇이 생겼다. 지하철을 타면 건너편의 사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직은 잘 볼 줄 모르지만, 최고의 관상은 부처님 얼굴이라고 한다. 가늘고 긴 눈에 코가 우뚝하고 콧방울이 두툼하며 얼굴이 퉁퉁한 것. 각이 진 얼굴은 안 좋게 본다.

‘꼴’의 주인공은 허 화백 자신. 관상에 대한 만화를 그리려는 만화가 ‘마수걸이’가 ‘신기원’ 선생에게 관상에 대한 책 ‘마의상법’을 하나씩 배워 공부해 나가는 이야기다. 같이 공부하는 여성 ‘고정란’은 ‘마수걸이’가 만화를 완성하면 책으로 내기 위해 그가 제대로 공부하는지 감시하러 나온 출판사 직원이다. 작가의 관상 공부 과정이 만화로 그려지는 셈이다. 주인공 ‘마수걸이’가 늘 ‘선 캡’을 쓰고 나오는 것도 이색적이다. ‘상대가 관상을 통해 나를 읽는 것이 기분 나쁘다’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

본보 메인 섹션에 인기리에 연재하는 ‘식객’과 더불어 ‘꼴’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식객’만 하면 여유가 좀 있어요. 좋은 소재가 생각났을 때 빨리 해야지 안 그러면 김이 빠져요. 조금 무리가 돼도 하고 싶을 때 해야지.”

데뷔한 지 34년, 매일 몇 장씩 그려 온 만화가 계산해 보면 13만 장이 넘는다.

“힘이 꺾이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조영남 씨가 그러더라고. 자기는 히트곡도 없는데 그저 오래 하니까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그 얘기도 맞지 싶어. 아, 진짜 오래됐지. 그래도 만화 그리는 게 자전거 타는 것과 같아요. 페달 안 밟으면 넘어져. 한 달만 안 그려봐. 그림이 되나.”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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