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맘때 한국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1997년 11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IMF’를 비틀어서 만든 말이다. 달러 부족으로 IMF에 손을 내미는 한국의 처지를 빗대 ‘낙제생’이란 뜻을 담은 농담이었다.
그전까지 한국에선 IMF가 뭐하는 기구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IMF에 한국이 돈을 빌리는 대가로 경제 주권을 넘겨줬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한국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에도 일반인들은 IMF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IMF’라는 단어는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짓눌렀다.
IMF는 1944년 서방 45개국이 체결한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이듬해인 1945년 12월 27일 창설됐다.
1930년대 세계 각국이 자국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 경쟁을 벌인 게 계기가 됐다. IMF의 임무는 흐트러진 국제 통화 질서를 바로잡는 것. 즉, 브레턴우즈 협정에서 채택한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초기만 해도 IMF는 전후 세계 경제 질서를 재건하는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러다 1970년대 초 미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자 위상이 흔들리고 역할이 애매해졌다. IMF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국가에 금융을 지원하는 일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IMF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금융 지원을 구실 삼아 지원을 받는 국가에 긴축 재정, 시장 개방 등 ‘내정 간섭’ 수준의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중심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국가별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 개혁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IMF가 후진국을 돕기는커녕 후진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IMF 스스로도 최근 “세계화로 인해 국제사회에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는 자아비판성 보고서를 냈다. IMF 비판에 앞장서 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최근 역내 은행 설립을 추진하면서 IMF 탈퇴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IMF는 내부적으로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출 감소로 이자 수입이 크게 줄어 “재정을 시급히 정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최근 받았다. 구제 기구가 오히려 구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10년 전 위협적인 존재로 한국인의 머릿속에 각인됐던 IMF가 어느덧 처량한 모습이 됐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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