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스티브가 있다. 지금은 50대가 된 둘은 학창시절부터 유명한 ‘괴짜’였다. 둘 다 전자공학에 미친 ‘와이어헤드(wirehead)’였지만 진짜 천재는 다섯 살 연상의 스티브였고, 고아 출신으로 입양된 스티브는 맨발로 돌아다니며 명상에 심취한 히피 스타일의 와이어헤드였다. 전자의 종교는 과학이었지만 후자의 종교는 선불교였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양 스티브가 각자 500달러를 투자해 1975년 세운 회사가 그 유명한 ‘애플’이다.
오늘날 애플하면 떠오르는 이름, 스티브 잡스(52)는 ‘어린 스티브’다. 그의 고교 선배이자 애플의 토대가 된 최초의 PC 애플컴퓨터를 만든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 스티브 워즈니악(57)이다.
카리스마 덩어리인 스티브 잡스를 꺼리는 애플마니아들은 애플의 진정한 영혼은 워즈니악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록그룹 ‘비틀스’가 배출한 양대 스타에 견주어 “잡스가 폴 매카트니라면 워즈니악은 존 레넌”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내성적이고 은둔지향적인 워즈니악이 저널리스트 지나 스미스와 함께 쓴 이 책은 그것이 절반의 진실임을 보여 준다. 이 책은 ‘21세기의 빌 게이츠’로 화려하게 부활한 잡스를 새롭게 조명하며 2005년 출간된 ‘icon 스티브 잡스’(민음사)의 후광의 산물인 동시에 반작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2006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가 i(애플의 상징)로 시작하면서 ‘한때 나는(I was)’과 발음이 같은 ‘iWOZ’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사실 창조는 항상 워즈니악의 몫이었지만 그걸 상품화한 사람은 잡스였다. 불법 전화해킹 장치 ‘블루 박스’, 30개의 칩만으로 구성된 애플컴퓨터Ⅰ, PC의 원형이 된 애플Ⅱ…. 그는 1인용 비디오게임 ‘브레이크 아웃’의 최소집적회로를 설계한 수익금으로 수천 달러를 받은 잡스가 이를 700달러로 속이고 그중 절반만 자신에게 줬다고 씁쓸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워즈니악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록히드사의 미사일개발자인 아버지에게서 세살 때부터 전자학의 원리를 차근차근 배운 그에게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기계장치’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사명이 중요했다.
5년 뒤 애플은 나스닥에 등록됐고 두 스티브는 억만장자가 됐다. 거기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렸다. 잡스는 경영자로 권력게임에 중독됐다. 반면 워즈니악은 자신 몫의 주식을 애플직원들에게 주당 5달러라는 헐값에 1인당 2000주씩 넘겨주는 ‘워즈 플랜’을 실천했다. 1982년과 1983년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2400만 달러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US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주최했다. 게다가 애플이 점점 ‘공룡’이 돼 가자 새로운 발명을 위해 최저임금을 받는 정직원의 신분만 갖고 1985년 애플을 떠나 다시 통합리모컨을 생산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1989년부터는 자신의 아이가 다닌 초등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확실히 이런 풍모는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다 1986년 이사진에 의해 강제로 축출된 잡스와 대비된다. 워즈니악이 애플의 진정한 ‘구루(스승)’로 비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비틀스의 음악을 만든 것은 매카트니지만 그 영감과 정신을 불어넣은 것이 존 레넌이라고 한다면 애플의 기술을 만든 것은 워즈니악이지만 오늘날 애플의 기업문화와 비전을 발전시킨 것은 잡스다.
이런 차이는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에서도 발견된다. 워즈니악에게 음악산업은 값비싼 도락이었지만 잡스는 음악을 무기로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개발해 애플을 부활시켰다.
책의 말미에 워즈니악은 말한다. “어떤 면에서 애플은 내 인생의 독사과였다”고. 자신의 인생이 애플에 끌려 다녔다면서. 그것은 잡스에게도 마찬가지다. 서른 살의 나이에 세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자만하다가 추락했으니. 그러나 10여 년의 야인생활 끝에 성숙해진 모습으로 권토중래에 성공한 잡스는 그 독을 약으로 바꾸는 것을 배웠다. 잡스가 돌아온 뒤 워즈니악도 애플의 자문역으로 복귀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적 매력에선 잡스를 능가하는 워즈니악을 만남으로써 오히려 비호감의 대명사인 잡스의 마력도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