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은 유교 영향 안 받아 서양문명 수용에 여유”

  • 입력 2008년 1월 2일 02시 52분


구한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 중에는 가마가 교통수단으로 불편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구한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 중에는 가마가 교통수단으로 불편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립문화재硏, 서양인이 쓴 문헌 요약집 펴내

20세기 초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은 한국의 새해 풍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으로 알려진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가 1901년 창간한 ‘한국평론’ 3권(1903년) ‘한국의 새해’ 편은 “한국인에게 새해는 모든 사람의 생일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태어나면 바로 한 살로 치기 때문에 섣달그믐에 태어나면 바로 다음 날 두 살이 된다고 생각하며 새해에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긴다”는 것. 나이 개념에 대한 서양인과 한국인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 고유의 새해 풍습 중 하나인 석전(石戰·돌싸움·돌팔매질을 해 승부를 겨루는 놀이)을 미국인의 야구 사랑과 비교한 표현도 흥미롭다. 1905년 나온 한국평론 6권은 새해 첫날부터 보름까지 남성들이 석전에 열중하는 것에 놀라며 “미국 도시 주민들이 자기 도시 소속 야구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 한국 마을 사람들도 자기 마을의 투석가들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평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당시 석전이 가장 열정적으로 열린 곳은 평양 송도(개성) 서울이고 ‘가장 정교한 투석가가 모인 곳’은 평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서양인들이 쓴 한국 관련 문헌 114종(저서 86종, 잡지 28종)을 요약해 펴낸 ‘서양인이 쓴 각종 문헌 해제(解題)’엔 이처럼 19세기 말∼20세기 초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의 생활풍습이 생생하다.

캐나다 출신 제임스 게일(1863∼1937) 목사가 1898년 펴낸 ‘한국의 스케치’는 유교가 조선에 끼친 영향에 대한 서양인의 색다른 시선이 눈길을 끈다. 그는 “조선 문명이 후진적인 것은 형식에 치우친 유교 교육으로 본성이 억제되고 낡은 윤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이런 관습에서 자유로운 신분으로 머슴을 주목한다.

“머슴은 유교의 나쁜 영향 탓에 말살된 조선 민족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머슴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태평하면서도 육체적으로 지칠 줄 모른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일 여유를 지녔다. 문서를 읽을 능력은 없으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안다. 머슴은 조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존재이고 개성을 고스란히 지녔다.”

물론 서양인들의 시선은 대체로 ‘사회는 단순사회에서 복잡사회로 진화한다’는 사회진화론, 오리엔탈리즘에 갇혀 조선을 원시적인 후진 국가로 보는 데 치우쳐 있다.

“조선인은 뜨거운 것을 집으면 귓불을 잡고 뱀에게 물리면 뱀을 무는 것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한국의 보고·寶庫’ 1892년 4월호)라거나 “조선 여인은 결혼식 날에 즐겁게 참석하지 않는다. 마치 목각인형처럼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섰다 앉았다, 밀렸다 끌렸다 하며 딱딱한 예식을 마치는데 매우 안쓰럽다”(‘변화하는 한국’·1912년·제임스 게일)는 표현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관점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1886년)에서 “소리 내어 책 읽는 습관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고 말한다. 12세기 무렵 묵독(默讀)이 시작된 서양과 달리 19세기 말까지 우리 민족은 음독(音讀)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인 스튜어트 컬린(1858∼1929)처럼 한국의 전통놀이를 집중 조사한 사람도 있다. 그는 ‘한국의 놀이-유사한 중국과 일본의 놀이와의 비교’(1895년)에서 윷놀이 같은 한국의 놀이가 음양오행의 우주적 상징을 표현한 것이라고 예찬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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