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키는 부모의 자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 2등에 운동도 잘했다. 명문 중학교까지 들어갔으니 주위에선 칭찬 일색. 그런데 요즘따라 이상하다. “머리에 두툼한 인형 머리를 뒤집어쓴” 기분이다.
이제는 히비키도 이유를 안다. 인근 수재들이 다 모인 중학교. 자기는 평범할 뿐이었다. 매일 공부하지만 따라가기도 벅차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당연히’ 잘할 거라 믿는다. 그때, 가출했던 ‘형’ 유이치가 7년 만에 돌아왔다. 곱게 화장하고 치마를 입은 채.
‘하모니 브러더스’는 유이치가 돌아온 3주간의 히비키 가족 이야기다. 보통 가족 입장에서 ‘게이’인 아들이자 형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형의 출현 이후 성실하고 모범적이던 가족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줄곧 내재했지만 덮어뒀던 균열이 드러난다.
상식이란 범주에 갇힌 가족은 어떤 낯선 이보다 무섭다. ‘칼 퇴근’ 하던 아빠는 유이치와 마주치지 않으려 매일 늦는다. 엄마는 형이 샤워한 욕실을 “꺼림칙하다”며 청소한다. 가족이기에 머물기를 허락했으나 딸로 살고 싶은 아들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
히비키라고 다르진 않다. 형과 마주 앉은 식탁은 언제나 어색하다. 아이들의 놀림엔 “그런 형 없다”고 거짓말한다. 차이를 인정 못하는 편견. 친구 후토시를 대할 때 극에 달한다. 살가운 후토시에게 매몰찬 히비키. 뚱뚱한 데다 사시(斜視)니까. 남과 다르니까.
청소년용이지만 ‘하모니 브러더스’는 무겁다. 문체나 서사구조가 어렵진 않다. 다루는 내용이 깊다.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평균’과 ‘정상’이란 잣대. 그 편향된 시선을 걷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히비키는 깨닫는다. 인형 머리를 쓴 듯 답답했던 이유가 뭔지. 왜 오히려 형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지. 일등만을 바라는 부모와 내가 다르듯, 게이도 사시도 같지 않을 뿐인 것을. 상처받는 건 차이를 지닌 그들만이 아니었다. 상처를 주는 편도 편견에 갇힌 채 숨이 막혔다. 인형 머리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었다.
소설은 명쾌한 결말을 주진 않는다. 형과 부모의 화해는 여전히 멀다. 히비키라고 처지가 크게 나아질 기미는 없다. 하지만 형은 말한다. “집에 가자. 그리고 몇 번이고 애기해 보는 거야.” 냉대가 기다릴 걸 뻔히 알면서도 유이치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 벽을 세운 게 사람이라면 허무는 것도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아이는 진짜 어른이 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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