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출판사 사장님 “치열한 저자의 영혼 느꼈어요”

  • 입력 2008년 1월 5일 02시 55분


2007년 여름 출간된 ‘세상의 모든 지식’. 이 책은 지금까지도 출판 동네의 화젯거리다. 저자인 김흥식 씨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서해문집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책을 내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출판사 대표가 책을 냈다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출판사 대표들도 책을 쓰거나 번역을 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책의 탄생’, 이기웅 열화당 대표의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 타계한 김성재 일지사 대표의 ‘출판의 이론과 실제’ 등. 최근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가 ‘편집자 분투기’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책은 모두 출판 인생을 회고하거나 출판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시집 소설집을 내는 출판인도 적지 않지만 작가로 책을 낸 것이지 출판인으로서 출판의 노하우를 살려 책을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 대표의 이 책은 다르다. 출판 업무와는 다른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 명의 저자가 되어 직접 책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드물다.

이 책은 정치 경제 철학으로부터 역사 예술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이룩해 온 모든 지식과 지성의 발자취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이쯤 되면 그렇고 그런 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김 대표의 집필 동기를 들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터넷의 영향인지 요즘 단편적인 지식을 묶은 책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철학이 없더군요. 비록 단편적인 지식을 소개한 책이라고 해도 무언가 근저를 흐르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최근 쏟아져 나오는 교양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김 대표는 이 책을 쓰면서 저자들의 고민을 체험하기도 했다.

“직접 책을 써 보니 저자들의 애환이 확 느껴지더군요. 출판사 사장으로서 책 만들 때는 상품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제가 책을 써 보니 그건 상품이 아니라 저자의 영혼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출판사 대표가 저자의 고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직접 책을 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김 대표의 책은 출판동네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산처럼 출판사의 윤양미 대표는 김 대표를 부러워한다.

“출판사 대표가 출판 편집의 노하우를 살려 관심 분야의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우리 출판계를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사실은 저도 김 대표처럼 책을 쓰고 싶은데….”

물론 모든 출판사 대표가 책을 쓸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쓴 원고를 책으로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 같은 출판인이 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 없다.

지호출판사의 장인용 대표는 한국 자장면의 문화사를 쓰고 싶어 한다. 올해 그 책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