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도 처음엔 그 별에 신이 있다고 믿었네”

  • 입력 2008년 1월 5일 02시 55분


◇역사 속의 인간/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 지음·이신철 옮김/304쪽·1만6500원·에코리브르

우리는 누구인가. 삶, 생명은 무엇인가. ‘오늘’은 무엇인가, 또 언제인가. ‘여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독일 출신의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바이츠제커(1912∼2007)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답은 면면히 흘러온 인간과 자연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 앞부분에 불쑥 어릴 적 기억을 꺼낸다. 12세 때 본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린다. 이 놀라운 광경 앞에서 그는 별들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어린 바이츠제커에게 별이 공 모양의 가스덩어리라는 사실과 신의 존재는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이후 바이츠제커는 양자역학자 하이젠베르크를 알았고 물리학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5세의 바이츠제커에게서 신앙은 사라졌고 물리학 천체물리학 철학 연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소 엉뚱한 이 회상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암시한다. 역사는 인간이 자연과 인간을 이해해 온 과정이다. 우리의 인식과 떨어져 존재하는 역사는 없다. 바이츠제커의 개인사가 그가 기억하고 그의 현재 속에 존재하는 것에 한정되듯 우주 생명 자연의 역사도 “기독교의 시간 계산으로 20세기 후반 인간들이 자연의 역사를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의 어릴 적 기억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종교에서 과학으로 옮아가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을 은유한다.

바이츠제커는 종교 형이상학 물리학 수학이 걸어온 길을 조망한다. 인간의 유래에 대한 성서 속 사유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유럽 형이상학의 역사, 물리학 수학 양자학 등 과학의 역사를 ‘둘러본다’. ‘둘러본다’는 것은 저자의 표현. 바이츠제커는 이 책을 “여러 식물이 서로 뒤엉켜 있는 정원에서 하나의 연관을 찾아 헤매는 산책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

이 산책 끝에 그는 종교가 문화의 담지자 역할을 잃고 난 뒤 그 자리를 차지한 과학과 기술의 책임에 대해 얘기한다. 과학이 ‘참과 거짓’뿐 아니라 ‘선과 악’의 차이를 묻는 역할까지 담당했기에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이다. 원자폭탄의 발명 이후 물리학을 계속해도 좋을지 주저하게 만든 저자의 고민이 배어나온다. 그는 “과학이 가져올 치명적 결과를 회피할 수 있게 사회의 의식과 구조를 변화시키는 건설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산책’을 끝낸다.

바이츠제커는 하이젠베르크의 수제자로 스물세 살에 교수 자격을 얻었고 1970, 80년 현대 세계의 생존 조건을 연구한 막스플랑크 연구소장을 지냈다. 한 부분에 매몰돼 전체를 보지 못하는 현대의 학문 상황에 평생 경종을 울렸다. 이 책은 ‘보편적’ 지식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