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日流)의 바람 중에서도 요시다 슈이치(40·사진)는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가다. 어떤 작품은 독자들의 호응이 높지만 어떤 작품은 쑥 처진다. 순수문학 작품에 주어지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이지만, 대중적인 소재도 즐겨 다룬다.
장편 ‘악인’에 대해 작가는 “감히 나의 대표작이라 하겠다”고 밝혔다. 스스로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작품의 무게감으로만 따지면 중간쯤에 놓일 법하다.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살인사건이며, 살인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상황부터 범인이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을 줄거리로 삼아 대중소설의 얼개를 갖췄다. 그렇지만 줄거리 자체가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요시다 슈이치가 묘파하는 것은 이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모습이다.
후쿠오카 인근 국도의 고개에서 보험설계사인 20대 여성 이시바시 요시노가 살해당했다. 요시노는 전날 밤 친구들에게 얼마 전부터 사귀게 된 남자 친구 마스오 게이고와 데이트하러 간다고 얘기해 놓은 터다. 그러나 평범한 요시노가 ‘킹카’ 게이고와 사귄다는 건 거짓말이다. 실제로 만난 건 인터넷 만남사이트에서 알게 된 토목공 시미즈 유이치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게이고가 지명수배를 받지만 유이치가 진범으로 밝혀지기까지의 과정’ 같은, 극적인 내용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이 이야기는 평범하다. 절묘한 트릭도, 기상천외한 반전도 없다. 대신에 ‘살인사건’이라는 커다란 계기로 인해 전과는 같아질 수 없는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금세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독서의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다.
살인을 저지른 유이치는 사랑에 목마른 사내다.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그는 만남사이트에서 만난 또 다른 여성인 의류판매원 마고메 미쓰요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위로받고자 한다. 그런 유이치를 안타까워하는 미쓰요는 그가 행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고 어떻게든 묻혀지기를 소망한다. 겉멋이 잔뜩 든 게이고는, 죽어버린 요시노가 그저 친구들에게 떠벌리는 얘깃거리일 뿐이다. 소박한 가장이었던 요시노의 아버지는 딸을 상처 입힌 사내에게 복수하겠다고 나선다.
작가가 드러내 보이는 것은 ‘과연 누가 악인인가’ 하는 점이다. 유이치가 들려주는 유년의 상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죄를 간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만 그 빌미를 제공하고 양심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운 게이고의 모습은, 반대로 어떻게든 죄를 묻고 싶어진다. 작가는 이렇게 엇나가는 비극의 굴레를 감정에 쏠리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원제 ‘惡人’(2007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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