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오면 도시는 냄새의 감옥이 된다/인사동이나 청진동, 충무로, 신림동, 청량리,/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저녁의 통로를 걸어가보라/떼지어 몰려오고 떼지어 몰려가는/냄새의 폭주족 (…) 저녁 6시, 나는 마비된 감각으로/냄새의 숲 사이 비틀비틀 걸어간다’(‘저녁 6시’에서)
냄새가 이렇게 순정하지 않은 것이었던가? 시인의 감각은 날이 섰다. 이재무(50) 시인의 시 ‘저녁 6시’는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흘러넘치는 냄새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일깨운다. 왜냐하면 그 ‘냄새’는 ‘도시의 타락’과 등가이기 때문이다.
이재무 씨가 새 시집 ‘저녁 6시’를 냈다. ‘70년대 상경파의 불운한 생’(‘봄밤’에서)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도시에서 살기의 고단함을 겹쳐 보인 이 씨. “내가 써 온 지리멸렬한 시편들은 거의 대개가, 비록 그 용량이 협소하나 생활의 터전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생활의 발견’이야말로 지금까지 그래 왔듯 내 시가 끝까지 견지하여야 할 지적 목록이자 재산”이라고 겸허히 말하듯, 그의 시는 삶의 풍경과 가깝다.
운율감 있는 시어 구사에, 때론 감정이 넘쳐 나는 듯도 하지만, 소박한 솔직함이 그의 시를 구별 짓는다. ‘식전에 일어나 마당을 쓴다/찬물 뿌려 아직 잠 묻어 있는 바닥 깨운 뒤/손주 볼 알뜰히 문질러 닦는 할미의 손길로/살뜰하게 구석구석 마당 쓸다보면/아직 보내지 못한 애증과 집착/왜 이리도 많은 것인가’(‘쓴다’에서)
격렬했던 1980년대에 시를 쓰기 시작해 숨 가쁜 사회의 변화를 목도해 온 그는 2000년대의 풍경이 낯설다. 그러나 그늘과 불의를 고발해 온 그는 목청을 높이는 비판 대신 담담하게 ‘달라진 세상’을 묘사한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성자였던, 생을 긍정하던 가난은/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 가난은 저마다 무력한 개인이 되어/모래알로 흩어졌다 지하로 잠적해버렸다/눈에 띄지 않는 가난에 대하여/누가 관심과 애정을 보일 것인가/생활의 중증장애자, 구차한 천덕꾸러기 되어/몰매 맞는 가련한 왕따,/가난은 이제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가난에 대하여’에서)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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