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프랑스 사상에 대한 관심은 변화의 바람에 민감하다. 실존주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등으로 변모를 거듭하며 붐을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데리다,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등의 잇따른 사망 이후 한동안 무풍지대에 접어들었던 그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미풍이 될지 태풍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그 바람몰이의 주역으로 꼽히는 3인방이 알랭 바디우(70), 에티엔 발리바르(66)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68)다. 이들은 1960년대 프랑스 고등사범학교를 다니며 루이 알튀세를 사사한 68세대의 대표적 좌파 사상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알튀세의 비판적 계승자로 꼽히는 발리바르와 ‘차이의 철학자’ 들뢰즈의 강력한 맞수로 꼽히는 바디우에 비해 랑시에르 파리8대학 명예교수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철학자다. 발리바르와 함께 알튀세의 ‘자본론 독해’ 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68혁명을 기점으로 전통 마르크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스승과 결별한 뒤 1974년에는 ‘알튀세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책을 발표하며 독자적 좌파이론을 펼쳐갔다. 그는 특히 전통적 계급이론을 뛰어넘으며 평등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천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저서 가운데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독한 역설의 철학을 펼쳐 보인다.
첫째, 현존 정치체제 중에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일치하는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적 관점에선 과두정치체제에 불과함에도 민주주의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의 심화가 결국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욕망의 평등으로서 민주주의가 초래하는 무질서의 심화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의 확산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적이었던 전체주의적 특징을 가져온다는 통찰이다. 국가가 사회를 집어삼키는 식으로 전체주의가 획일화와 평준화를 낳았다면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가 국가를 집어삼키는 전체화를 세계적 차원에서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신성함을 무너뜨리는 논리가 파격적이다. 민주주의가 불사조처럼 스스로의 모순을 불태움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는 결론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원래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모순 속에서 피는 꽃이 아니었던가. 민주주의만큼 인간 그 자신이 역설적 존재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