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쓰다듬는데 왜 할퀴니, 고양이같은 내 삶아…‘미나’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 미나/김사과 지음/324쪽·9800원·창비

미나의 친구 지예는 죽었다. 정확히는 자살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충격을 받은, 정확히는 충격받은 걸로 짐작되는, 미나는 방황한다. 술 먹고 토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선글라스와 헤드폰을 쓴 채. 눈물은 가려진 채.

미나의 친구 수정은 헷갈린다. 그녀 마음이 안 보인다. 지금 단짝은 자긴데. 지예 문제만큼은 벽에 부딪힌다. 뭐가 문제지. 구역질나는 세상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는 없었는데. 수학 공식의 답이 자판기처럼 튀어나오질 않는다. 전송이 거부된 문자메시지. 그렇다면 휴대전화를 부숴 버릴 수밖에.

소설 ‘미나’는 독특하다. 전작 ‘영이’에서 저자가 보여 준 과감한 어법, 소통의 단절에 시달리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여전하다. 그것도 더 절실하게. 이제 그 시선이 10대에게 향했을 뿐.

P시(소설의 무대)의 어른들은 궁상맞다. 복권으로 벼락부자가 된 자칭 ‘지식인’ 미나 아빠. 유행 따라 운동권에서 명품 쇼핑으로 흘러간 엄마, 그리고 그들을 수긍하거나 부러워하는 지식인 친구들. 수정의 부모 역시 식탁 위 수표로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 그런 치들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상처받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을 터득한다. 원하는 이와 통하고, 막을 사람은 차단하면 된다. 내 감정이 중요할 뿐, 남의 상처 따윈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수정의 ‘고양이 길들이기’는 그 절정이다. 쓰다듬고 챙겨 줬는데 손목을 할퀸다. 그래서 목을 조른다. 아, 이게 아닌데. 베풀었는데 말이 안 먹히니 때려 준다. 아, 이게 아닌데. 우유를 떠먹였는데 손가락을 문다. 벽으로 힘껏 내던질 수밖에. 내 대화를 고립시키니 죽일 수밖에. 이제 수정은 두 번째 고양이에게 칼날을 겨눈다. 미나, 차례다.

‘미나’는 당황스럽다. 감정의 번지점프. 하지만 소설은 ‘살아갈수록 질식되는 삶’을 되뇐다. “소박한 믿음, 그리고 약간의 대화”가 필요했던 수정. 그 악다구니, 사실은 모두가 그렇지 않나. 수정의 눈물이, 그만큼의 웃음이 애처로운 이유. 인간은 외롭고 여린 존재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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