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들은 감정과 느낌이 새겨진 제2의 피부를 이루고 있다. …옷들은 옷장 속에 걸렸을 때와 그 옷을 입었을 때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몸 위에 자리한 옷은 우리가 가진 기분 상태와 슬픔, 피곤함이나 즐거움 등의 색조를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옷은 말이 없다. 그저 피부를 감쌀 뿐. 숱한 의미를 붙이는 건 유일하게 옷을 입는 동물, 인간이다. 그가 입은 셔츠, 그녀가 신은 부츠에 대한 설왕설래. 옷으로 사람을 읽는다.
‘나를 벗겨줘’ 역시 비슷한 시도에서 출발한다. 옷을 분석하고 그것을 걸친 인간의 마음을 해석한다. “왜 그녀는 빨간색 원피스를 좋아하나” 식의 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저자인 두 명의 프랑스 여성 정신과의사는 가장 바깥에 노출된 피부인 옷을 통해 가장 깊은 내면의 무의식을 끄집어낸다.
‘노 팬티’ 편을 보자. 같은 팬티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유년의 친구를 선택했던 여성. 성인이 된 어느 날, 그는 즉흥적인 감정으로 자신의 팬티를 벗어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서 팬티는 2가지 의미를 지닌다. 부모가 옷을 선택하던 시절, 은밀한 속옷은 자신을 보호하는 부모의 굴레였다. 이 때문에 같은 팬티를 입은 처지는 동질감으로 발현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의무로 지켜 온 속박을 벗는 순간, 그녀는 가족이란 연대가 부여하는 금기에서 해방된다. 여기서 팬티는 욕망을 지닌 자아를 깨닫게 하는 마중물이 된다.
19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진 책은 흥미롭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의복에 숨겨진 심상의 그림자를 조목조목 끄집어낸다. 떠나간 이의 옷을 보관하는 마음이나 연인의 애정이 옷차림에 끼치는 영향도 설득력 있게 풀었다. 프랑스 샹송에서 따왔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육체를 훑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마음을 벗긴다.
다만 어려운 용어가 없다고 내용도 쉬울 거라고 짐작했다간 큰코다친다. 특히 남성 독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가. 티셔츠 하나 사며 몇 시간씩 쇼핑하는 애인, 집안 가득 옷을 펼쳐 놓고 입을 옷 없다고 투덜대는 누이의 심리가. 그리고 오늘 입고 있는 옷에 숨겨진,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마음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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