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오늘 인간이 일용해야 할 양식은…잡식동물의 딜레마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지음·조윤정 옮김/560쪽·2만5000원·다른세상

치킨 너깃은 옥수수 덩어리다.

우선 재료로 쓰이는 닭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다. 코팅용 반죽에는 옥수수 가루가 들어 있고, 튀길 때는 옥수수기름을 쓴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착색제, 너깃을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구연산도 옥수수를 원료로 한다.

청량음료의 단맛을 내는 데는 고과당(高果糖) 옥수수 시럽이 쓰인다. 따라서 치킨 너깃을 먹으며 청량음료를 마신다면 “옥수수 덩어리를 먹고 마시는 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화학적 분석까지 해가며 음식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현대인의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심리학자 폴 로진의 개념을 가져와 이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지만 이로 인해 먹을거리와 관련된 모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인간의 처지를 가리킨다.

먹을거리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지면서 잡식동물로서의 딜레마는 더욱 커졌다. 육식을 할 것인가, 채식을 할 것인가. 유제품을 먹는 채식주의자가 될 것인가, 동물성 식품은 아예 손대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 것인가. 유기농 사과와 일반 사과 중 어떤 것을 고를까.

현대인이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은 음식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것이 먹을거리의 기원을 찾는 여행. 이른바 ‘음식사슬’의 시작부터 탐색하는 여정이다. 저자가 처음 찾은 곳은 아이오와 주의 옥수수 농장. 과거에는 스테이크용 육류와 유제품이 풀을 먹고 자란 소에서 나왔다. 하지만 식료품 생산이 거대 산업의 형태를 띠면서 쉽게,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옥수수가 풀을 대체했다. 유제품뿐 아니다. 케첩, 사탕, 수프, 와플, 핫소스, 마요네즈, 비타민…. 이제 대부분의 가공식품에는 옥수수가 어떤 형태로든 들어 있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짧고 명쾌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에피소드와 경험담, 팩트 제시와 분석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하지만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다 보니 지나치게 전문적인 대목도 없지 않다. 제분 공장의 가공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어 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저자는 옥수수 농장에 이어 ‘유기농’ 제품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버지니아 주의 유기농 농장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풀을 베고, 닭을 도살하는 경험까지 하며 진정한 유기농 제품에 대해 탐색한다. 그러고 나서 “대안적 운동으로 시작했던 유기농이 이제는 대규모 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지적한다.

수천 마리의 젖소가 울타리 처진 농장에서 사육되는데도 여기서 나온 유제품에 ‘유기농’이라는 라벨이 붙는 것은 유기농 인증 곡물을 사료로 한다는 이유뿐이라는 것이다. ‘방목해서 기른’ 닭의 고기라며 제품을 내놓는 농장에선 닭들이 생후 6주까지 닫힌 공간에서 자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책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 식품산업의 불투명성과 비도덕성을 지적하는 데 할애되긴 했지만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인문학적 통찰력으로 음식이나 식문화와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태학적인 제반의 문제를 논한다. 먹을거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역사와 철학적 담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의 실제 경험담이 토대가 됐다는 점이다. 닭을 처음 도살했을 때의 느낌, 첫 사냥에 나섰을 때의 감상, 직접 채집하고 기른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과정 등 저자의 경험담이 책의 곳곳에서 심각하고 고차원적인 이야기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저자는 마치 철학자가 던지는 명제와 같은 말로 책을 맺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몸이다.”

먹을거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교감한다는 뜻인지…. 책을 덮고 문장의 의미를 잠시 새겨 봤다. 하지만 정말 잠시뿐이었다. 이내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오늘 저녁 식사 땐 무엇을 먹을까.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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