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한태]태극기 정신은 문화의 상생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문화재청은 최근 건국 60주년인 올해 광복절에 맞춰 독립운동과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태극기 가운데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태극기를 ‘근대 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는 태극기가 1883년 고종 20년 공식 국기로 채택된 이래 정식 국가문화재로 자리 잡는 역사적 사건이다. ‘임시정부 태극기’ ‘김구 서명 태극기’와 일제강점기 의병장 고광순의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멕시코 한인들의 ‘이민 태극기’ 등은 망국의 설움과 광복의 기쁨을 비롯한 당시 시대상을 오롯이 담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자못 크다. 이번 태극기의 문화재 등록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며 우리 문화 인식의 진일보이기도 하다.

문화재는 과거와 현재를 원형대로 보존해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시대상과 역사의 기록이다. 그러나 사유재산권 보호와 국토 개발이라는 소탐(小貪)에 밀려 귀중한 문화재들이 훼손되거나 실종되는 대실(大失)을 범했던 게 현실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만들어 당장 많이 파는 데만 급급해 자동차의 역사문화를 보여 줄 박물관까지는 생각이 아직 못 미치는 모양이다. 국민의 기호식품인 라면만 해도 일본 요코하마(橫濱)엔 오래전에 ‘라면 박물관’이 들어서 관광명소가 됐다. 급변하는 산업화의 굴곡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견실해야만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 철거보다는 이전만 해도 됐을 옛 조선총독부 중앙청도, 최초의 국산차 ‘시발택시’도 국내에서 이미 사라졌다는 서글픈 사실이 과거를 잊고, 잃은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문화의 현재 자화상이기도 하다.

문화재에 대한 일반의 고정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문화재 지정 대상을 대폭 넓혀야 한다. ‘문화재=건축물’이라는 좁은 생각을 고쳐야 한다. 건물뿐 아니라 현재 주변에 있는 의식주 생활 가운데 문화성과 역사성, 예술성을 갖춘 것은 모두 ‘문화재감’이라는 인식을 갖자. 예부터 문화가 융성할수록 문화재도 많았으니 ‘문화를 담는 그릇’인 박물관도 많을수록 문화 선진국이다.

둘째, ‘문화재=골동품’이라는 편견을 걷어내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는 현재의 축적이다. 과거의 것이 현재의 문화재가 됐듯이 현재의 것은 지금 당장 보존해야 미래의 문화재가 될 수 있다.

셋째, ‘문화재=내 것’이라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문화재’라는 공유의식을 갖자. 그리고 선진국처럼 건축물까지도 필요하다면 옮기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서울시청 구 본관이 새 청사 디자인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문화재의 위치에만 집착한 경직성 탓일 수도 있다.

태극기의 문화재 정식 등록을 계기로 차제에 ‘태극은 문화 그 자체’라는 기본 인식이 중요하다. 태극이 음양의 합일을 나타내듯 태극 자체가 모든 음양의 작용과 무궁한 변화를 나타내는 문화적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음과 양의 상대적 요소가 결국은 ‘하나’가 되는 태극의 본래 뜻을 음양의 분열로만 매도하는 건 태극의 철학적 깊이에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태극엔 편협한 민족주의를 초월한 세계 문화적인 폭넓은 우주관이 담겨 있다. 건국 60주년과 새 정부 출범을 맞는 대한민국은 태극의 본래 뜻을 이해하는 문화 인식의 토양 위에서만 바로 세워질 수 있다. 태극처럼, ‘영혼’이 살아 숨쉬는 정신문화가 넘쳐야 진짜 문화재도 많아진다.

유한태 숙명여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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