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과 번뇌, 미망(迷妄)과 아집 속에 살아온 일생을 더듬고 입멸(入滅)의 순간에 던지는 깨달음의 노래. 큰스님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열반송(涅槃頌)을 남긴다. 그건 큰스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마지막 사유이면서 어리석은 중생에게 던지는 마지막 법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열반송의 울림은 크다.
다양한 열반송을 담은 책이다. 불교의 중흥기인 고려 말 14세기 보우 스님부터 조선시대 경허(1849∼1912), 만공(1871∼1946) 스님 그리고 20세기 선승인 성철(1912∼1993) 스님에 이르기까지 92인의 열반송과 그 의미를 비롯해 스님들의 삶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스님들의 열반송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법문이다. 밤에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20년에, 앉은 채로 입적(入寂)을 맞이했던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유명한 성철 스님. 그의 열반송은 우주 원리를 담은 듯 장대하다.
‘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죄업(罪業)은 하늘에 넘치고 수미산(須彌山)을 지나친다/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은 만 갈래나 되고/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네.’
경주 불국사의 중흥을 이끌었던 월산(1913∼1997) 스님의 열반송은 불교의 윤회, 삶과 죽음의 이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생 동안 돌고 돌았지만/아직 한 걸음조차 옮긴 바 없네/본래부터 그 자리는/천지 이전의 것이었네.’
이 짧은 열반송에서 우리네 속된 욕망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절로 느낄 수 있다. 큰스님들의 열반송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동양 최고의 선승이었던 서옹(1912∼2004) 스님의 열반송은 읽는 이의 시각 후각 청각을 매료시킨다.
‘운문(雲門)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은 없고/아직 봄은 남았는데 꽃은 반쯤 떨어졌네/한 번 백학이 날고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솔솔 불어오는 솔바람은 붉은 노을 보고 있네.’
제8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1917∼2003) 스님의 열반송은 독특하다. 열반송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모호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나는 그런 거 없다. 정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저 무욕(無慾)의 자유로움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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