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살길 찾기

  • 입력 2008년 1월 13일 20시 48분


진보 학계가 연초부터 새로운 담론 모색에 분주하다.

보수의 승리로 끝난 지난해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이다. 보수 진영이 '신보수(뉴 라이트)'를 지향하며 새로운 담론 형성에 성공한 반면 진보는 구태를 벗지 못해 위기에 빠졌다는 내부 비판이 거세다. 또 신보수의 실체를 진단하고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체성과 담론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보수를 분석하고 신진보를 모색=소장 진보학자들의 모임인 세교연구소는 1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세교연구소 대회의실에서 '대선 이후 진보 개혁 세력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연다. 발제자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 교수는 "진보 진영이 신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얘기할 것"이라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무작정 반대할 게 아니라 인정하는 선에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진보적 지식인들은 신보수와 신자유주의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한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보수에 대한 '가치 판단' 이전에 "신보수가 나름대로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판단'을 전제로 대항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조 교수는 '신보수'의 차별성에 주목한다. 그는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이 4일 '17대 대선 그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신보수는 초기 산업화 과정의 개발독재, 과거의 반공주의적 보수와 구별되는 '시장형 보수'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신보수는 '독재 대 반독재' 또는 '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조 교수는 "지난 선거에서 진보세력은 낡은 프레임에 갇혀 대안적 목표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담론 투쟁'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진보의 자기 성찰이 시작되면서 '신진보(뉴레프트)' 계열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레프트를 주도하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보수가 합리적, 실용적 보수로 전환한 마당에 진보도 실용적 진보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세계화와 성장 우선 논리를 무조건 부인하기 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공정한 시장경제' '인간 중심의 세계화'처럼 진보만이 낼 수 있는 대안을 부각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진보 학계에선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역동적 중도주의' '공동체 자유주의' 같은 화두가 제시되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봄호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대담 형식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다룰 예정이다. 좌우파의 대립 구도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진보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획이다.

▽주목받는 '제3의 길'=1990년대 말 유럽의 좌파가 새로운 방향 설정을 통해 장기 집권해오던 우파를 무너뜨린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정통 좌파의 이념을 상당 부분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까지 수용하는 '제3의 길'을 내세워 1997년 보수당을 물리치고 18년 만에 노동당 정권을 세웠다. 1998년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도 이와 비슷한 '신중도' 노선으로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펴낸 '제3의 길'이라는 저서가 이들의 좌표 설정에 이론적 근거가 됐다. 이론의 핵심은 '좌파와 우파를 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것.

블레어 전 총리와 슈뢰더 전 총리는 시장친화적인 중도주의로 노선을 전환했다. 이들의 노선은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복지 정책을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져 영국과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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