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분비 억제 치료 필요
아들-딸 방 따로 쓰게 배려
“열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초경이라니….”
주부 이모(39) 씨는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체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딸은 초경을 겪고 있었다. 이 씨는 “딸아이가 예상보다 빨리 생리를 시작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성적(性的) 기능이 활발해지는 사춘기는 1990년대만 해도 중학교 1, 2학년 때 찾아왔다. 2000년대 초에는 초등학교 5, 6학년경으로 내려가더니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찾아올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부모는 막연히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자녀의 신체적 변화를 놓치곤 한다.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의 변화를 찬찬히 관찰하며 대처방법을 고민해 보자.
○ 신체적 변화 관찰하기
자녀가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면서 신체적 변화를 체크한다. 최근 훨씬 키가 커진 느낌을 받았다면 전년 키와 비교해 본다. 매년 보통 5, 6cm 자라던 키가 사춘기가 되면 남아는 10cm, 여아는 7, 8cm 정도 자란다.
여자의 경우 2차 성징으로 가슴에 멍울이 생기고 머리에 기름이 많아진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땀샘 활동이 왕성해져 액취증(암내)이 생기기도 한다. 간혹 짙은 갈색 냉이 속옷에 묻어 변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평소 가슴을 아파하는지도 알아본다.
남자 아이들은 고환과 음경이 커지고 음모가 나며 몽정을 한다. 목욕을 하며 고환이 까맣게 착색되고 커졌는지 관찰한다. 최근 거울을 자주 보는지, 멍하니 있거나 짜증을 내는지, 성적 호기심이 커졌는지도 관찰한다.
○ 성조숙증인지, 조기 사춘기인지 판단
초등 저학년 자녀에게 변화가 확인되면 정상 범주를 벗어나는 ‘성조숙증’인지 단지 사춘기가 빨리 온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성조숙증은 성호르몬 과잉으로 2차 성징들이 너무 빨리 나타나는 병이다. 성조숙증의 95%는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나머지 5%는 뇌종양, 난소·고환 종양, 부신피질호르몬 분비 장애 등으로 인해 생겨나므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여자의 경우 만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되기 시작하고, 만 9년 6개월 이전에 초경이 시작되면 성조숙증일 가능성이 높다.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작은 호두 크기로 커졌을 경우 성조숙증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춘기는 10∼13세에 나타난다.
성조숙증 아이들은 그만큼 성장판이 빨리 닫혀 일찍 성장이 멈춘다. 치료를 안 할 경우 성인이 됐을 때 신장이 여자는 150cm, 남자는 160cm 안팎에 머무를 수 있다. 소아과 전문의와 상의해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성조숙증이 늘어나는 것은 아이들이 서구화된 식생활로 지방 섭취가 늘어나고, TV와 인터넷에서 선정적 자극을 접하며, 각종 환경호르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피하고 바나나, 두부, 아몬드 등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섭취한다.
성조숙증보다 1, 2년 늦게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조기 사춘기일 뿐 병은 아니다. 심계식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진료 결과 조기 사춘기라고 해도 중간에 성장이 급속히 빨라지면 성조숙증이 될 수도 있으므로 3개월 후 다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남아와 여아는 다르게 대처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춘기가 찾아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린 나이에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면 친구보다 부모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은 2차 성징이 빠르게 찾아오면 또래 친구보다 기운이 세져 운동을 잘하고 리더의 역할을 하는 반면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이럴 때는 가족 내 특정 역할을 부여한다. 이수정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아빠가 출장 가는 동안 네가 집의 주인이니 잘 지켜라’라는 등 존재감을 인정하면 혼란을 덜 겪는다”고 말했다. 방학 때 캠핑, 봉사활동으로 정체성을 심어 주는 것도 좋다.
여자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조숙해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초경을 하면 예쁜 선물로 축하해 주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임을 강조해 안심시킨다. 또 오빠나 남동생과 방을 따로 쓰도록 배려해 준다. 신체적 변화를 의식해 자녀와 스킨십을 피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런 행동은 오히려 자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도움말=강재성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 홍성도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이서경 경희의료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유한욱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교수)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권민주(23·서울대 외교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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