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벗어난 실용적 진보 모색 움직임 활발
진보 학계가 새로운 담론 모색에 분주하다.
지난해 대선의 결과에 따른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보수 진영이 ‘신보수(뉴라이트)’를 지향하며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 반면 진보는 구태를 벗지 못해 위기에 빠졌다는 내부 비판이 거세다. 신보수의 실체를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체성과 담론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신보수를 분석하고 신진보를 모색=소장 진보학자들의 모임인 세교연구소는 1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세교연구소 대회의실에서 ‘대선 이후 진보 개혁 세력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연다. 발제는 김호기 연세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진보 진영이 신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얘기할 것”이라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무작정 반대할 게 아니라 인정하는 선에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진보적 지식인들은 신보수와 신자유주의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한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보수에 대한 ‘가치 판단’ 이전에 “신보수가 나름대로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판단’을 전제로 대항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신보수’의 차별성에 주목한다. 그는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이 4일 ‘17대 대선 그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신보수는 초기 산업화 과정의 개발독재, 과거의 반공주의적 보수와 구별되는 ‘시장형 보수’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 선거에서 진보 세력은 낡은 프레임에 갇혀 대안적 목표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담론 투쟁’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진보의 자기 성찰이 시작되면서 ‘신진보(뉴레프트)’ 계열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레프트를 주도하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보수가 합리적, 실용적 보수로 전환한 마당에 진보도 실용적 진보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며 “세계화와 성장 논리를 무조건 부인하기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공정한 시장경제’ ‘인간 중심의 세계화’처럼 진보만이 낼 수 있는 대안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보 학계에선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역동적 중도주의’ ‘공동체 자유주의’ 같은 화두가 제시되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봄호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대담 형식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다룬다. 좌우파의 대립 구도로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획이다.
▽주목받는 ‘제3의 길’=1990년대 말 유럽 좌파가 새로운 방향 설정을 통해 장기 집권해 오던 우파를 이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정통 좌파의 이념을 상당 부분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도 수용하는 ‘제3의 길’을 내세워 1997년 보수당을 물리치고 18년 만에 노동당 정권을 세웠다. 1998년 독일 총선에서 이긴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도 이와 비슷한 ‘신중도’ 노선으로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펴낸 ‘제3의 길’이라는 저서가 이들의 좌표 설정에 이론적 근거가 됐다. 이론의 핵심은 ‘좌파와 우파를 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블레어 전 총리와 슈뢰더 전 총리는 ‘시장 친화적 중도주의’로 노선을 전환했다. 이들의 노선은 소득 양극화를 심화하고 복지 정책을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져 영국과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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