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며,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국내 독자에게도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출판계 일류(日流)의 고전이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기획한 ‘제1회 해외문학기행-설국문학기행’이 10∼12일 30명의 독자와 함께 현지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新潟) 현 유자와(湯澤) 곳곳의 무대를 돌아보는 행사다. 메이지대 객원 교수인 고운기(41) 시인이 안내를 맡았다.
‘설국’은 주인공 시마무라가 게이샤인 고마코에게 끌려 흰 눈으로 덮인 온천장을 찾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요코를 만나면서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 간에 묘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심리의 섬세한 변화를 담은 뛰어나게 아름다운 문체는 서양 독자들까지 감동시켰다.
병약했던 가와바타는 좋은 온천을 많이 찾아다녔고, 그중 한 곳이 1934년 묵었던 유자와 고원 아래 다카한 료칸(旅館)이었다. 소설에서 시마무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천을 다녀오는데, 온천을 즐겼던 가와바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카한 료칸은 가와바타가 묵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2층 가와바타가 묵었던 방을 재현해 놓았다. 방 한쪽 벽에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고운 얼굴의 여성 사진과 함께 실린 주간지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생전의 가와바타가 소설 속 고마코의 모델로 인정한 사람”이라고 고운기 씨가 일러준다. ‘마쓰에’라는 이 여성은 작가가 료칸에 머물 때 아침마다 작가의 방에 불을 넣어 주고 목욕물을 데워 줬다고 한다. 고마코처럼.
소설 도입부에서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만나는 료칸 아래 신사(神社)는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눈 가운데 서 있다. “여자는…삼나무 숲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신사였다. 이끼가 돋아난 돌사자 옆의 번듯한 바위에 가서 여자는 앉았다.” 그 바위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료칸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시내 설국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엔 가와바타의 친필 원고와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고마코의 방이 재현돼 있다.
작가가 직접 ‘설국’의 도입부를 붓글씨로 쓴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인상적인 묘사도 그렇거니와 일본어 특유의 운율이 느껴지는 부분으로 유명하다. 일본 안내원이 도입부를 읽어줬다. 시 낭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참가한 독자 중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예성 씨는 낭독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게 문학이구나 싶다”고 감상을 밝혔다.
소설가 쓰시마 유코(61) 씨는 “작가로서 가와바타는 우상이었고 ‘설국’을 읽고 산 너머 눈의 나라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혔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사적(私的) 흔적을 몸으로 체험할 때 작품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설국’의 독자로 문학기행에 참가한 소설가 박덕규(50) 씨는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가보고 소설을 다시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빛난다”고 말했다.
유자와=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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