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슬픔인 줄만 알았다. 광원 예닐곱 명이 서로 어깨를 부딪칠 만큼 비좁은 막장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림에서 받은 느낌이 그랬다.
표정을 알기 힘들 정도로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고개를 수그린 채 모자에 달린 램프 불빛에 의지해 묵묵히 식사하는 남자들. 사각형 양은 도시락에 꼭꼭 채워 넣은 밥은 이제 온기를 잃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어 버렸을 터. 옹기종기 놓인 찬통에는 김치니 콩장이니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이 담겨 있고, 밥 먹는 동안 탄가루는 검은 눈처럼 소리 없이 흰 밥 위로 내렸을 것이다.
연초까지 서울의 가나아트센터에서 16년 만에 개인전을 연 화가 황재형(56)의 투박한 유화 ‘식사’(91×117cm·1985년)를 대했을 때 가슴이 저릿해 왔다.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목숨 가진 사람이라면 도리 없이 감내해야 할 ‘밥’에 대한 원초적 책임. 그 앞에서 투덜대는 소설가의 ‘지겹다’는 투정도 그렇듯, 그림에서 ‘밥벌이의 애잔함’이 더 짠하게 다가온다. 광원의 얼굴 위로 비정한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의 얼굴이 오롯이 겹쳐졌기 때문일까. 캔버스 밑바닥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는 듯하다.
한데 뜻밖이었다. 1983년 강원 태백의 탄광촌으로 들어간 뒤 직접 광원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에까지 깊숙이 들어앉아’ 작업해 온 화가의 말. “그때 먹은 밥은 꿀맛처럼 달콤했다”고 회상하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기에게 찾아온 가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억울해하거나 섭섭해 하지 말고. 그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학창 시절 교실 난로에 올려 데워 먹던 나와 내 친구들의 도시락, 그리고 반 고흐의 그림 한 장이 동시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누추한 오두막에서의 저녁식사 풍경을 그려낸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때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에서 이 걸작의 완성에 앞서 작업한 석판화를 만났다.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은 등불 아래서 접시에 담긴 감자를 손으로 먹는 이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농부들이 마치 땅을 파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애썼단다. 이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지”라고 썼다.
작가 신경숙은 단편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화자를 통해 그림을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왠지 그 사람들이 저를 잡아당기더군요. …불빛 아래의 그 사람들은 거칠고 강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낡은 의복과 울뚝울뚝한 얼굴은 어두웠지만 선량해 보였습니다. 감자를 향해 내민 손은 노동에 바짝 야위어 있었지요. …비참에 억눌릴 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존 버거 소설의 제목을 빌리자면 ‘그들의 노동과 함께하였던’ 두 화가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란 점에서 닮아 있다. 밥벌이의 쓰라림 속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빛을 보듬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되지만 정직한 노동으로 벌어들인 식탁은 초라할지라도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다. 한 번도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삶에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들, 무거운 삶의 무게 아래에서 불평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에겐 슬픔도 힘이 된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에서)
화가와 시인들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삶의 소중함을 읽어 낸다. 좋은 그림이, 좋은 시가 오늘도 정직한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매서운 세상으로 나서는 모든 이에게 평안을 주고 위로가 되는 이유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길, 옆 자리에 앉은 이가 펼친 책에서 눈에 잡힌 구절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새해 다짐이 떠올랐다. 살면서 인생이 날리는 강펀치를 맞아 종종 눈에 따스한 물이 차오르는 일이 생길지라도 두려워 말기. 그 순간이 바로 우리 영혼에 무지개를 새기는 순간이라고 믿어 보자는 말이다. 힘들게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정상에 오른 순간이 그렇게 가슴 벅차진 않을 것이다.
막장은 탄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황재형은 “닫힌 현실이란 점에서 서울도 막장이다”고 술회한다.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각자의 막장에서 운명만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