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이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하다고 일축했겠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의 이야기를 즐기고 소비하는 이른바 ‘황당족(族)’이 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최근 ‘KT경영연구소’와 공동 발표한 논문 ‘미래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핵심가치 탐색 연구’에서 이러한 황당족들의 특성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집단적 재미를 공유하는 ‘디지털 부머(Boome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 우주와 소통 ‘빵상 아줌마’ 팬클럽 6000명 넘어
어느 날 갑자기 우주신이 내렸다는 황씨가 빵상 아줌마가 된 것은 황 씨가 ‘빵상’을 우주 신(神)의 인사말이라고 소개했기 때문. 황 씨는 우주인의 언어라며 “까라까라 마라마라 쇼루쇼루 샤라사라” “빵빵 똥똥똥똥 땅땅 따라라라” 등을 되뇌었다.
누리꾼들은 즉각 이 표현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고 패러디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빵상 아줌마를 소재로 활용한 손수제작물(UCC)도 넘친다.
그의 팬 카페인 ‘빵상교’에 가입한 회원은 6000명을 돌파했다. 또 다른 채널러로 자신을 외계인 ‘토바야스’라고 부르는 이채령(여) 씨도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깜짝 공약을 내세우며 ‘허경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허 씨의 인기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누리꾼들은 그를 한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에게 붙이는 인터넷 용어인 ‘허 본좌’로 칭하며 열광하고 있다. 동호인 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에는 지난해 12월 ‘허경영 갤러리’가 만들어진 이후 600여 페이지에 수많은 사진과 UCC 등이 올라와 총 1만2000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고전소설 ‘허생전’을 패러디한 ‘허경영전’이 떠돌기도 한다.
누리꾼들의 열광은 정작 당사자들도 예상치 못했던 일. 빵상 아줌마 황 씨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방송 후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재 요청과 섭외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사람들의 전화도 쇄도해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자서전도 준비 중이다.
○ 비현실적인 것에서 진짜 같은 재미 추구
황당족은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캐릭터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빵상 아줌마와 허 씨는 황당한 주장을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하다는 게 특징. 황당족은 엉뚱함과 진정성이 공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쾌감을 느끼며 그들의 행동을 따라한다.
김시은(20·이화여대 심리학과) 씨는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주장해 ‘진짜 같은 재미’가 있다”며 “재미 삼아 믿어 보는 거고 믿어도 손해 될 것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황당족은 일단 재미있으면 이유를 묻지 않은 채 열광하고 이를 놀이 혹은 유머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황당족들은 마니아적 세계를 이제 벗어나고 있다. 빵상 아줌마는 지상파 TV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6일 방영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애드리브 브라더스’ 코너에는 남자 개그맨이 빵상 아줌마의 우주 언어를 사용했다.
허 씨 또한 지난해 대선에서 9만6000여 표(0.4%)를 얻었다. 그러나 황당한 주장이 지나쳐 화를 입기도 한다. 허 씨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혼담이 오갔다고 주장하다가 박 전 대표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14일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 “집단적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합리적인 토론 어려워질 것”
황상민 교수는 디지털 부머에 대해 “이들은 뭉쳐서 함께 띄우자는 특징을 보인다”며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해 즐기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것 중 재미있는 것에 열광하고 혼자 즐기지 않고 집단적인 관계와 소속감이라는 가치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황당족의 등장에 대해 △무조건적인 재미 추구 △비이성적인 현실에 대한 보상 심리 △진정한 소통에 대한 갈증 등으로 분석했다.
명지대 김정운(여가경영학) 교수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사회는 모두를 가슴 벅차게 만드는 재미를 경험하지 못했다”며 “또 한 번의 재밋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우르르 몰려가다 보니 엉뚱한 것에서 재미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당족이 사고의 비논리화와 탈(脫)정치화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대 서이종(사회학) 교수는 “무조건적인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합리적인 토론이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놀이화된다”며 “정치와 사회에 대한 냉소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동호(25·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 박보람(23·서울대 언론정보학부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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