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와도 바꾸지 않을 만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 역사와 한문을 공부하는 일, 그것이 바로 탄허 큰스님의 뜻입니다. 탄허 기념박물관을 짓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박물관을 연구 도량으로 발전시켜 탄허 스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나갈 겁니다.”(탄허 스님의 제자인 혜거 스님)
유불선(儒佛仙)에 모두 통달하고 불경의 한글화 및 제자 양성에 불교 인생을 다 바쳤던 탄허(1913∼1983) 스님의 정신이 되살아난다.
탄허문화재단은 금강선원, 오대산 월정사와 함께 탄허 스님 열반 25주기를 맞아 서울 강남구 자곡동 대모산 자락에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탄허 대종사 기념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25일 공사에 들어가 내년 봄 개관할 예정.
박물관 규모는 지상 3층에 연건평 1500m². 탄허 스님의 유품, 각종 저작물 및 관련 자료를 보관 전시하게 된다. 이 박물관의 특징은 전시 공간보다 강의실이 더 넓다는 점.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 참선과 학문 연구의 도량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열심히 공부하는 일이 탄허 스님의 유지를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됐다.
탄허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의 최고 스님으로 추앙받는 인물. 특히 불교 경전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옮겨 불경의 한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번역한 불경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무려 10만 장 정도.
또한 월정사에 오대산 수도원을 세워 불교 경전과 도덕경, 장자, 주역 등을 강의해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제자를 무수히 길러냈다. 함석헌 선생도 탄허 스님에게서 ‘장자’를 배웠을 정도.
이번 건립 사업을 이끌고 있는 탄허문화재단 이사장 혜거 스님은 이 박물관을 한문학 동양학 분야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혜거 스님이 역점을 두는 것은 불경과 각종 동양 고전을 강의하고 한문 해독 능력을 키워주는 일. 일반인 전문가 가리지 않고 한문을 가르쳐 국내 최고 수준의 한문 서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다. 나아가 불교계뿐만 아니라 한학계의 숨은 인재를 발굴해 지원하고 이들이 불교 및 동양학을 심층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혜거 스님이 한문 공부를 특히 강조하는 건 한문을 잘 알아야 우리 역사를 알 수 있고 그 역사가 바로 서야 우리의 불교도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 혜거 스님은 “공부하지 않는 지금의 불교계를 반성하고 한국 불교 지성사를 이끌었던 탄허 스님의 정신을 되살려 우리 불교가 다시 한 번 동양 고전 연구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이 문을 열면 금석학의 대가인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부산 화엄사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스님) 각성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혜거 스님 등 불교계의 대표적 한문학자들이 강의를 맡게 된다.
혜거 스님은 스승인 탄허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년 전 강남구 개포동에 금강선원을 개설해 일반 신도들에게 불교 경전과 참선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을 거쳐간 수강생은 약 27만 명에 이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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