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통화한 것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였다.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 양재호바둑도장에서 오후 10시까지 바둑 공부를 한 뒤 서울 왕십리에 있는 자취방으로 귀가한 시간이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바둑과 씨름하고 있어요. 도장 학생들과 바둑 두고 복기하고 사활 문제 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라요.”
헝가리 아가씨 코제기 디아나(25) 씨. 그는 2005년 한국에 바둑을 배우러 왔다.
그는 올 초 경사를 맞았다. 한국기원이 ‘유럽 바둑 보급에 매년 노력한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프로기사 특별 입단을 시켜준 것.
“아직 실력은 부족하죠. 입단 전 한국기원 연구생 2조에 속해 있었어요. 연구생에서 한 15등 정도 한 셈이죠.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금처럼 2년 정도 공부하면 여성 프로 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기대해요.”
그는 유럽에선 정상급 기사였다. 유럽의 수많은 아마대회에서 우승권을 넘나들었다. 유럽에서 17세에 아마 6단에 오른 것은 남녀 통틀어 디아나 씨가 처음이었다.》
바둑을 배운 건 9세 때. 아마 초단 실력의 아버지는 오빠에게만 바둑을 가르쳤다. 여자는 바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그는 흰 돌과 검은 돌의 조화가 이뤄내는 세계에 흥미를 느꼈다. 아빠와 오빠가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보며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마침내 디아나 씨의 열정에 손을 든 아빠는 딸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1년 반 만에 둘은 맞바둑이 됐다. 영어 바둑책밖에 없던 시절이라 영-헝가리 사전을 찾아가며 책을 독파했다. 영어 실력도 덤으로 키울 수 있었다.
“알 듯 모를 듯한 세계에 관심이 끌렸죠. 흑백만 있을 뿐인데 알면 알수록 더 심오한 재미를 주는 점에 매료된 거죠.”
그는 15세 때인 199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9위에 올랐다. 어린 여학생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을 보고 일본 프로기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그는 부모에게 연락했지만 “고등학교는 마치고 시작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헝가리로 돌아간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난 뒤에도 2년간 허송세월했다. 그는 이 공백을 아쉬워한다.
“그때 일본에서 눌러앉았으면 더 일찍 프로기사가 됐을지 모르죠. 그러나 깔끔하고 친절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일본과는 달리 정이 많고 화끈한 한국이 헝가리 사람에겐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는 2003년 한국에서 열린 아마대회에서 알게 된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를 통해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좋은 스승과 책을 갖고 공부하는데 그게 없었던 게 아쉬워요. 사활을 계산하는 것은 어릴 때 기초를 잡지 못해 아직도 어려워요.”
디아나 씨는 두터운 싸움바둑을 좋아한다. 어려운 수읽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그는 비슷한 기풍인 최철한 9단과 작고한 일본의 가토 마사오 9단을 좋아한다.
입단 후 부모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입단도 했으니 대학을 마치면 귀국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바둑으로 인생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입단만 하고 돌아갈 순 없죠. 세계 정상급 여성기사인 루이나이웨이 9단이나 박지은 8단 등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는 게 꿈이에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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