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달나라에도 도둑이 있었습니다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4분


느닷없이 오싹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벽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은 오전 1시, 삼라만상이 모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있을 시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는 가만히 일어나 서랍을 열고 손전등을 꺼내 들었습니다. 거실의 전등을 켤까 했습니다만, 가족 모두가 깨어나서 북새통을 이룬다면 또다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참기로 합니다.

그는 도둑과 1 대 1로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담력과 완력을 가졌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침실에서부터 도둑이 침입한 흔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의 모든 창문들과 현관문과 화장실문과 창문도 샅샅이 점검해 보았습니다. 다시 부엌에서 뒤뜰로 나가는 또 다른 도어의 잠금 장치까지 모두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단속해 두었던 문이 열려 있거나 도둑이 들락거렸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해진 그는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섰습니다. 젊은 그가 헛것을 본다거나 환청을 들을 만치 근력이 소진되거나 허약한 체질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뜰로 나섰습니다. 뜰에 도둑이 남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밖은 한 발 앞을 헛디딜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밤 12시를 넘긴 늦은 시각에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하얀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사이에 왜 이렇게 어두워진 것일까요.

그는 문득 하늘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리가 유난히 긴 그 도둑은 마침 하늘에 둥그렇게 떠 있던 달을 훔쳐서 커다란 자루에 담고 지금 어디론가 줄행랑을 치고 있습니다. 길도 없는 하늘로 도망치고 있는 도둑을 뒤쫓겠다는 것은 기막힌 망발이겠지요. 달을 도둑맞고 말았다면, 그것은 곧 절망이었습니다.

삭막하고 살벌하고 황량한 세상을 살다보면 정신은 조만간 부패하고 말겠지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당장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들만 소중하게 여기고 게걸스럽게 챙겨왔던 졸렬한 안목이 불찰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달은, 사냥개에게 목줄을 매어둔 것처럼 언제나 그 하늘 자리에 있겠거니 방심했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쌈해가는 해괴한 도둑이 있으리라고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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