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오정완 대표 등 거물 제작자 맹활약
홍보-마케팅 99%가 여성… 대부분 PD가 꿈
2008년 충무로엔 여풍이 불고 있다.
개봉 11일 만인 21일 관객 179만 명을 넘기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은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로는 419만 명을 기록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2002년) 이후 최대 흥행작이 됐다.
여성 핸드볼 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여성 감독뿐 아니라 여성 제작자, 여성 프로듀서(PD) 그리고 여배우가 뭉쳐 만든 여성들의 이야기다.
한 해 두세 편씩 나오던 여성 감독 영화는 지난해에는 9편이나 개봉돼 전체의 10%에 육박했다. 현재 한국 최대 여성 영화인 단체인 ‘여성영화인모임’(회장 채윤희)의 회원은 446명. 그중 기획 마케팅 분야가 82명으로 가장 많고 감독(독립영화 포함)이 49명, 프로듀서는 44명이다.
여성 감독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특히 2002년 여성 감독의 영화는 5편이나 개봉하면서 박찬옥(‘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배출했고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한 해 서너 편씩 여성 감독의 영화가 나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5년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공주’가 1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궁녀’ ‘내 생애 최악의 남자’ 등 여성 감독의 영화가 9편이나 개봉됐고 ‘궁녀’는 신인 여성 감독의 데뷔작으로는 고무적인 수치인 143만 명이 들었다. 올해는 ‘우생순’에 이어 다음 달 개봉하는 ‘6년째 연애 중’이 여성인 박현진 감독의 작품이고 박찬옥, 이정향 감독도 신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현장 통솔력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감독의 능력이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되면서 여성 감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궁녀’의 김미정 감독은 “감독이라서 힘든 건 있어도 여자라서 힘든 건 없었다”며 “어떤 스타일로 현장을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개인 성향의 문제일 뿐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감독들은 자신의 능력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데 미숙해 큰 흥행작을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가장 빛나는 분야는 영화 제작과 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프로듀서(PD) 분야다. 심재명(MK픽처스) 오정완(영화사 봄) 김미희(싸이더스FNH) 대표는 영화계의 굳건한 ‘빅3’ 파워 우먼. 마케터, 프로듀서로 일하다 재작년 ‘영화사 아침’을 차린 정승혜 대표도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준비 중인 ‘님은 먼 곳에’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만들며 제작자로 자리를 굳혔다.
2세대라 할 수 있는 이유진(영화사 집) 대표는 미국 영화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10인의 프로듀서’에 선정됐으며, ‘그놈 목소리’와 ‘행복’을 연달아 흥행시켰고 앞으로도 최동훈 박진표 등 톱클래스 감독과의 작업을 앞둔 ‘스타 제작자’다. 김무령 ‘반짝반짝 영화사’ 대표와 심보경 ‘보경사’ 대표 등도 2세대 젊은 여성 제작자들이다. 부상하고 있는 3세대 여성 PD에는 안수현(‘너는 내 운명’), 노은희(‘미녀는 괴로워’)가 꼽힌다.
심보경 대표는 “1990년대 한국 영화에 마케팅 개념이 도입될 즈음 여성 인력이 충무로에 많이 유입됐고 이들이 여성 PD로 진화한 것”이라며 “영화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남을 섬세하게 배려해 가며 사람들 간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PD 분야에서 여성들의 능력이 잘 발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홍보 마케팅 인력의 99%는 여성이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PD를 지망하고 있어 앞으로 기획력을 갖춘 여성 PD의 활약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박보람(23·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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