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에는 2집부터 시도해 온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도, 고독 향수 인생을 읊조리던 추상적인 가사도 덜하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고전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전 가사의 ‘하오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대신 구어체적 가사와 팬들이 가수 김동률에게 기대하는 말랑말랑한 곡들이 많이 담겨 있다.
먼저 앨범 재킷부터 눈에 띈다. 이국의 휑한 벌판(3집 ‘귀향’)이나 추운 겨울의 잿빛 도시(4집 ‘토로’)였던 앨범의 무대는 자신의 작업 공간(일부는 그의 여동생 방이라고 한다)으로 옮겨졌다. 가사집 속의 그는 자신의 방 안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휴대전화를 받고 독서를 한다.
5집 직전에 내놓은 ‘감사’까지, 과도한 편곡과 무거운 가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팬들이라면 그의 가벼움은 참을 만할 것이다. 음악적 실험에 대한 욕심을 감춘 대신, 단출하지만 뻔하지 않은 멜로디가 귀를 편하게 해 준다.
앨범의 출발도 가뿐하다. 모던록풍의 1번 트랙 ‘출발’은 그의 표현대로 ‘가장 김동률스럽지 않은 곡’이다. 휘파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플루트의 전주가 흥을 돋운다. 1집 ‘시작’ 앨범과 전람회 ‘여행’에서처럼 길 떠나기 전의 설렘이 묻어난다.
‘출발’이 이번 앨범의 콘셉트에 가장 맞는 곡이라면 3번 트랙 ‘오래된 노래’는 그룹 ‘전람회’ 시절의 오래된 팬들이 좋아할 만한 곡. 가사만으로도 자꾸 귀기울여지는 곡이다. ‘오래된 테이프 속에/그때의 내가 참 부러워서 그리워서/울다가 웃다가 그저 하염없이/이 노랠 듣고만 있게 돼 바보처럼.’ 이어 ‘클래지콰이’의 보컬 알렉스와 함께 부른 ‘아이처럼’은 ‘벽’ ‘욕심쟁이’의 계보를 잇는 말랑한 듀엣곡이다.
타이틀곡 ‘다시 시작해보자’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 이어 헤어지고 다시 시작된 연애 2부작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꼭 헤어진 연인에 대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음악을 대하는 그의 심정이 중의적으로 가사에 표현돼 있다. ‘아무래도 나는 너여야 하는가 봐/같은 반복이어도 나아질 게 없대도/그냥 다시 해보자 한번 그래 보자/지루했던 연습은 이제 그만 하자/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이번 앨범은 1998년 솔로 1집 ‘시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 앨범이 또 다른 음악적 실험을 위한 도움닫기일지, ‘어쩔 수 없이’ 대중성을 감안한 동어반복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쉼표 같은 느낌으로 인해 다음 음반이 더욱 궁금해진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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