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크로스 스킨族’ 난 예뻐지려고 여자화장품만 쓴다!

  • 입력 2008년 1월 25일 03시 00분


“너 피부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 이보람(26)씨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바로 피부 관리법이다. 비결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늘 ‘여성 화장품’ 얘기를 꺼낸다. 그의 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 10개는 모두 여성용이다. 스킨, 로션, 에센스 등 기초 화장품은 물론이고 수분 크림, 나이트 영양 크림 같은 기능성 화장품도 갖고 있다.

여기다 마스크팩, 아이패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 씨가 여성 화장품을 쓰게 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다.

군복무 시절 피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 주변에서 여성용 화장품을 써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다. ‘시세이도’의 여성용 기초 화장품부터 바르기 시작한 그는 “처음엔 끈적거려 이상했지만 피부를 촉촉하게 해 줬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용 화장품 개수를 점점 늘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발랐고 지금은 ‘피부미남’ 소리를 들을 정도다.

피부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자 덩달아 성격도 활발해졌다. 그는 회원 수 7만 명이 넘는 인터넷 화장품 동호회 운영진까지 맡고 있다. 이 씨는 “스스로 외모를 가꾸는 시대인 만큼 좋은 피부를 갖기 위해선 남녀 화장품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 화장품을 쓴다고?

화장하는 남자로 대표됐던 메트로 섹슈얼, 외모를 여성스럽게 가꾸는 크로스 섹슈얼을 넘어 여성처럼 촉촉한 피부를 갖기 위해 여성용 화장품을 바르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크로스 스킨족’이다.


▲ 영상취재·편집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박영대 기자

○ 기초 화장품에서 기능성 제품 BB크림까지

직장인 이승준(30) 씨도 대표적인 ‘크로스 스킨족’이다.

5년 전부터 남성 화장품과 작별한 그는 현재 기초 화장품을 비롯해 수분 크림, 에센스, 아이크림 등 모두 20여 개의 여성용 화장품을 쓰고 있다. 자기 전에 ‘스킨-에센스-아이크림-로션-나이트 크림-수분 크림’의 순으로 발라 최근 이마 주름도 펴질 정도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는 “처음엔 친구들도 의아해했지만 내가 권해 준 이후로는 친구들도 여성용 화장품을 쓰고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화장품 얼리 어답터’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엄마 몰래 안방에 들어가 ‘동동 구리무’를 바르던 시절 얘기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성 못지않은 뽀얀 피부를 갖기 위해, 남성용 화장품만으로 채울 수 없는 ‘플러스알파’를 얻기 위해 크로스 스킨족은 오늘도 여성 화장품을 바른다.

지난해 남성 화장품 시장이 5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남성용 화장품도 종류만 수십 가지지만 이들에겐 모두 ‘다른 나라’ 얘기다.

이들은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화장하는 남자’와는 다르다. 기초화장품부터 기능성 제품, 폼클렌징, 심지어 BB크림까지 남용이 아닌 여성 것을 찾는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성 못지않게 좋은 피부를 갖기 위해서다. 여성용 화장품을 즐겨 쓰는 남성의 수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 20대 남성 고객들을 대상으로 여성 화장품 구매 빈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자. 여성 스킨은 2006년 5800건에서 지난해 1만1000건으로, 여성 로션은 4000건에서 8900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아이크림은 2100건에서 2900건, 트러블케어는 9000건에서 2만 건 등 기능성 제품도 증가 추세다. 모공케어의 경우 3300건에서 1만5000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경향은 화장품 마케팅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성 화장품 중 기존 여성브랜드에 ‘옴므’(‘남자’를 뜻하는 프랑스어)나 ‘맨’을 붙인 제품이 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미래파나 오딧세이 등 유명한 남성 화장품 브랜드가 있지만 여성 브랜드 ‘헤라’에서 만든 ‘헤라 옴므’, ‘라네즈’에서 딴 ‘라네즈 옴므’를 새로 선보였다. 프랑스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 ‘랑콤’도 지난해 ‘랑콤 맨’을 만들었다.

○ 나에게 투자하는 즐거움

이들이 여성 화장품을 애용하는 것은 여성화장품의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30, 40대 남성들에게 여성 화장품 효과는 두드러진다.

5년 째 여성용 기능성 화장품 10여 개를 사용하고 있는 의류회사 영업부장 배경일(40) 씨의 말이다. “여성 화장품엔 주름 개선제나 마사지팩 등 중년 남성들이 사용하기 좋은 기능성 화장품이 많아요. 여성 화장품을 사는 건 나에 대한 투자라 생각합니다.”

드라메르 스킨, ‘장카’ 크림 등 여성용 화장품을 독일과 스위스에서 사온다는 직장인 김형남(32) 씨는 “운동을 해 피부가 거칠어졌는데 여성용 화장품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20대 남성들은 유행이라고 얘기한다.

‘SK-II’ 제품만 쓴다는 대학생 유민성(25) 씨는 “날씬한 남성, 머리 묶는 남성 등 갈수록 여성적인 남성이 유행이듯이 여성 화장품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여성처럼 좋은 피부를 가진 남자들이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성 화장품을 남성이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의 이상준 원장은 “남성 피부는 피지가 많이 분비돼 모공이 크고 피부가 두꺼운 반면 수분은 여성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는 평균적인 얘기고 개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별에 맞는 화장품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스킨케어연구2팀의 채병근 팀장은 “화장품은 남녀 간의 평균적인 피부 특성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성을 교차해서 쓴다고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차앤박 피부과’의 고보경 원장은 “남성과 여성 간의 호르몬 차이일 뿐 피부 조직 자체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남자가 여성 화장품을 쓰는 것은 ‘취향’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의사는 “여성용 미백 화장품에는 아주 적은 양이지만 ‘스테로이드성’ 물질이나 환경 호르몬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어 남성이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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