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회에서 친구 사귀기란 쉽지 않다. 술 한잔 하며 면 튼다고 친구일까. 게다가 ‘갑을관계’라도 될라치면, 코앞의 웃음은 썩은 동아줄일 가망이 크다.
국내 출판사와 해외 출판사 관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식문화라지만 책도 결국 상품. 수입 수출을 놓고 셈을 굴려야 하니 인간적인 관계가 들어서기 쉽지 않다.
‘은행나무’(대표 주연선)와 일본 출판사 ‘고단샤’도 처음엔 그랬다. 일본 최대 출판사니 더욱 그럴 터. 잘 만나 주지도 않았다. 주 대표는 “수많은 한국 출판사와 일하는데 조그만 우리를 챙겨 줬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 말했다.
그런데 일본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와 맺은 인연이 효과를 발휘했다. ‘파크 라이프’ ‘퍼레이드’ 등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그가 2005년 방한했을 때 친구가 된 게 컸다. 2006년 도쿄에 갔을 때 요시다 작가가 한턱내는 자리. 이 자리에서 주 대표는 고단샤 편집팀장을 비롯한 책 담당자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만나니깐 금방 친해집디다. 국적은 달라도 같은 출판인이고 편집자잖아요. 애환이나 답답한 점, 일본도 똑같더라고요. 술잔 기울이며 밤새는 줄 몰랐죠.”
그렇게 맺은 인연을 주 대표는 잘 가꿨다. 특별한 거 없어도 안부를 물었다. 속내도 털어놨다. 드디어 지난해 도쿄에서 만난 편집팀장이 “주 대표를 위해 챙겨 뒀다”며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게 ‘그들은 왜 남을 무시하는가’였다.
이 책은 10대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파헤친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타인 경시’ ‘가상적 유능감’ 등의 개념이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40여만 부가 나간 베스트셀러. 주 대표가 관심 많은 분야인 걸 알았던 고단샤의 배려였다.
국내에서도 이 책은 꽤 나갔다. 지난해 가을에 나온 사회과학서인데도 5000부가 넘었다. “그보다 더 안 나갔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건네준 책인데 무슨 상관입니까. 좋은 책 권해 주는 친구만큼 좋은 게 있나요.”
조만간 은행나무에서 지난해 고단샤의 최고 과학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낸다. 이 책은 노린 국내 출판사가 꽤 많았다는데…. 우정은 계속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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