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흑진주 쿠바, 하고도 아바나. 치명적 중독성을 가진 도시. 불온한 여인처럼 마초 이미지의 사내들을 향해 손짓하는 곳. 살사 리듬과 혁명의 구호가 타악기와 랩처럼 공존하는 땅. 해풍에 삭아 내린 페인트조차 표현주의 회화의 화폭으로 전이되는 곳…원색 패널 집과 나부끼는 색색의 남루한 빨래에서조차 치유할 수 없는 낙천성을 내뿜는 곳. 독한 럼과 시가 냄새와 체 게바라의 흑백사진과 영혼을 움켜쥐는 반도네온 소리가 뒤엉킨 몽환의 도시.”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김병종 화백은 쿠바의 첫인상을 이렇게 풀어냈다.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라틴 문화기행서다. 쿠바의 재즈그룹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인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연인인 화가 프리다 칼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 라틴 예술가들의 흔적을 비롯해 문화 역사 공간을 답사하고 그곳에 담겨 있는 라틴 문화의 독특한 향취와 애환을 글과 그림으로 되살려 냈다.
글과 그림은 저자 특유의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강렬하고 생생하다. 멕시코시티 프리다 칼로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프리다 칼로의 색은 무엇일까. 나는 바깥을 스치는 색깔들을 하나씩 살핀다. 마침내 맞닥뜨린 푸른 집. 지붕도 푸르고 벽도 푸르다. 문도 푸르고 창도 푸르다. 생의 이면이 아무리 잿빛으로 사그라져 내린다 해도 내 인생의 팔레트만은 푸른색으로 채우겠다.”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프리다 칼로의 삶을 심연 같은 푸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절절한 감성의 언어로 라틴을 사유하게 한다. 그의 언어를 좀 더 따라가 보자.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으로 맨발을 디밀 듯 푸른 대문으로 들어선다.” 독자들은 이미 라틴에 들어와 프리다 칼로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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