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문화지도]off 대학로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11분


작지만 기획력과 실험성으로 빛을 보고 있는 ‘오프 대학로’ 극장들. 2년이 넘게 한 작품을 올리고 있는 오아시스세탁소극장, 전체 공연의 70%를 젊은 연출가들과 공동 기획하는 나무와 물, 동인제로 공동 운영되고 있는 혜화동1번지(위부터). 이연우 대학생 인턴기자
작지만 기획력과 실험성으로 빛을 보고 있는 ‘오프 대학로’ 극장들. 2년이 넘게 한 작품을 올리고 있는 오아시스세탁소극장, 전체 공연의 70%를 젊은 연출가들과 공동 기획하는 나무와 물, 동인제로 공동 운영되고 있는 혜화동1번지(위부터). 이연우 대학생 인턴기자
《예술은 길 위에서 벌이는 업(業)이다. 정착을 모르는 예술인들은 매번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허허벌판에 개척한 공간에 자본이 침투하면 근방의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게 예술인들의 속성이다. 그들은 어디로 흩어지고 어디로 모여들고 있는 걸까.

주류로 변질된 미국 브로드웨이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오프브로드웨이(Off Broadway)’처럼 한국 인디문화의 메카인 ‘홍대 앞’과 ‘연극 1번지’인 대학로도 최근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新)문화지도’를 통해 ‘홍대 앞’과 대학로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문화지대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대앞-대학로 상업화 高임차료” 엑소더스

대안문화 새 둥지서 연극-음악 젊은 실험

26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전용극장. 매표소에는 ‘앗, 이럴 수가. 매진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올해 들어서만 24일째 매진. 관객 김혜연(25) 씨는 “무대도 좁고 의자도 불편했지만 공연이 메시지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아 ‘진짜’ 연극을 본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9시, 서울 혜화동.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연극 ‘행복탕’을 보고 나온 관객 김성강(38) 씨는 “유흥이 아니라 문화가 소비되던 1980년대 대학로에 다시 온 느낌이다.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 공연계의 새로운 메카 ‘오프 대학로’

100석 미만의 작은 무대, 지하 소극장, 등받이 없는 객석, 좁은 골목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15분 이상 걸어야 하는 외진 위치….

공연의 변두리 이미지를 벗지 못하던 혜화동과 명륜동 일대가 이제는 참신하고 실험적인 작품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점점 고급화, 상업화돼 가는 대학로와 차별화하는 의미에서 ‘오프(Off) 대학로’로 불리는 이곳에는 현재 13개 소극장과 아트브릿지 등 공연기획사 4곳이 둥지를 틀고 있다(지도 참조). 극단 여행자도 얼마 전 이 일대에 전용 연습실과 극단 사무실을 마련한 것을 비롯해 4개의 연습실이 있어 연극인들로 북적인다. 올해 3개 소극장이 이곳에 추가로 문을 열 예정. 5년 전만 해도 공연장이라고는 연우소극장과 혜화동1번지 두 곳밖에 없던 이곳이 이젠 아이디어 넘치는 젊은 예술가들이 몰리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프 대학로에서 출발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적지 않다.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세계적인 공연장인 영국 바비칸센터 무대를 밟은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이 초연된 곳도 바로 혜화동1번지였다.

2006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흥행작 ‘경숙이, 경숙 아버지’도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먼저 선보였고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현재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 중인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처음 선보인 것도 혜화동의 허름한 지하 소극장이었다. 이 밖에 ‘청춘예찬’ ‘지상의 모든 밤들’ 등 연극계의 수확으로 꼽히는 보석 같은 작품이 모두 이곳에서 다듬어져 탄생했다.

○ 왜 혜화동인가

오프 대학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 3년 전부터다.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대학로 소극장은 연극 대신 소극장 뮤지컬의 차지가 됐다. 티켓 가격이 비싼 뮤지컬이 앞 다투어 대학로로 밀려오면서 대관료도 덩달아 뛰었다. 비교적 시설이 좋은 대학로 소극장의 대관료는 하루에 100만∼150만 원 선. 한 공연기획자는 “대학로의 웬만한 공연장은 대관료만 한 달에 5000만 원씩 들어 감당할 수 없다”며 “최근 몇 년 사이 대관료가 두 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반면 오프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의 대관료는 하루 30만∼50만 원으로 대학로 소극장의 25% 수준. 2월 명륜동에 개관하는 나온씨어터의 홍정혜 대표도 “비싼 대관료 때문에 요즘 대학로에서는 흥행 뮤지컬과 개그 공연만이 성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2005년 명륜동에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전용극장을 마련했다. 외딴 곳에 있지만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얼마 전 관객 10만 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오프 대학로 소극장들은 흥행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더욱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 극단 동숭무대의 임정혁 대표는 “대관료가 싼 만큼 관객 수에 큰 부담이 없어 하고 싶은 작품을 좀 더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흥행에 위험 부담이 큰 창작 초연이 많은 것도 공통점. 게릴라극장의 서정록 극장장은 “외국 흥행작이나 상업적인 공연이 넘쳐 나는 대학로와 차별화할 수 있는 창작극을 많이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게릴라극장은 지난해 참신한 창작 공연 아이디어를 갖고 온 신인 연출가들에게 무료로 대관했다.

선돌극장의 손기호 대표는 “새로운 실험, 젊은 감각, 참신한 기획으로 대학로가 이제 하지 못하는 창작극 산실 역할을 오프 대학로가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9개 소극장 연합 ‘세븐 스타’ “脫대학로” 외치며 정극 운동▼

‘세븐 스타’는 탈대학로 물결의 상징적인 단체다.

지난해 7월 7일 혜화동1번지, 가변무대, 글로브극장, 단막극장, 동숭무대, 76스튜디오, 우석레퍼토리극장 등 대학로와 ‘오프 대학로’의 7개 소극장이 모여 ‘세븐 스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올해는 모시는 사람들과 선돌극장이 합류해 9개로 늘었다. 현재도 3, 4개 소극장이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 5년 안에 상업 공연이 늘어나는 대학로를 벗어나 새로운 대안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박장렬 ‘세븐 스타’ 대표는 “관객이 뮤지컬이나 개그콘서트로 몰리면서 대학로에서 정통 연극이 소외되다 보니 정극을 하는 극장들이 힘을 합쳐 보자는 목적에서 모였다”며 “1980년대처럼 정극이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공간을 창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극 관객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좌석의 20%를 영화 입장료와 같은 7000원에 판매했다. 인터넷 대행업체의 사정으로 잠시 중단된 상태지만 현재 상반기 안에 재개한다는 목표로 다른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 사랑티켓제도가 일부 계층에게만 허용된 만큼 7000원 티켓 제도가 호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여름에는 9개 소극장이 함께 올리는 ‘레인보우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 ‘레인보우’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극장마다 연령대에 맞는 공연을 기획해 릴레이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서지은(24·연세대 사회학과 3년) 정한나(25·연세대 국문과 4년) 김한나(23·서울대 경제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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