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은 4일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우수기사상을 받고 이런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인기기사상을 받으러 다시 단상에 올라온 그는 “아까 한 말을 농담으로 아는 거 같은데…”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직설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겁나게 하겠다’는 도발적인 용어를 쓴 것이 화제에 올랐다. 바둑계에선 이창호 9단이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작심’을 엿볼 수 있는 표현으로 해석했다.
이창호 9단은 올해 ‘겁나게 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지금까지 13승 무패. 지난해 성적까지 포함하면 16연승이다. 그 상대도 조한승 목진석 안조영 9단, 윤준상 이영구 6단 등 랭킹 10위권 이내의 기사들이 적지 않다.
주위에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이창호 9단을 괴롭힌 건강이 많이 좋아진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대국 중 열이 올라와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끝내기 단계에서 역전패당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얼굴에 티가 날 정도로 붉어지는 경우가 없어졌다.
그는 최근 집에 헬스기구를 들여놓고 운동을 하고 있다. 탁구 테니스 등 격렬한 운동 대신 헬스가 몸에 잘 맞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월간바둑 구기호 편집장은 “이창호 9단의 건강 이상은 1년에 70국에서 많으면 100국 가까이 두는 생활을 20년 이상 이어오면서 피로가 누적된 결과”라며 “자의든 타의든 지난해 성적 부진으로 비교적 여유 있게 쉰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준 9단은 “26일 원익배 십단전 결승 1국에서 전투에 능한 목진석 9단을 상대로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승기를 낚아채는 솜씨는 전성기 시절 이창호 9단을 보는 듯했다”며 “바둑의 흐름이 유연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바둑계에선 이창호 9단이 십단전에서 우승하느냐가 올해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십단전에서 우승하면 왕위전 KBS바둑왕전 중환배에 이어 4관왕이 되면서 7관왕 이세돌 9단을 따라잡을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