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 오규원 타계 1년 만에 유고시집 ‘두두’ 나와

  • 입력 2008년 2월 1일 02시 42분


최소 언어로 무한 時空을 품고

끝없이 명징해 마냥 투명했던 詩人 오규원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어떤 느낌을 주거나 사유케 하는 게 있다면 그곳의 존재가 참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현상이 참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라는 뜻)의 세계다.”(산문 ‘날이미지 시에 관하여’ 중에서)》

오규원(1941∼2007) 시인이 시집 ‘두두’의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생전의 그의 소망은 대상과 시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두두시도 물물전진’이라는 선가(禪家)의 말도 그의 시론과 닿아 있다. 그는 최소 언어로, 사물이 ‘이야기’가 되기 이전의 ‘최소 사건’(평론가 이광호의 말)을 포착하기를 꿈꿨다. 이렇게 찰나의 호흡으로 쓴 시편들을 모아 ‘두두집’을 내려던 게 살아 있을 때 시인의 계획이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유고 시집 ‘두두’(문학과지성사)가 나왔다. 짧은 시 33편 모음인 1부 ‘두두’와 그보다 좀 더 긴 호흡의 시 17편을 모은 2부 ‘물물’이 엮였다. 절반은 발표된 작품이지만, 절반은 세상에 내보여지지 않고 시인의 컴퓨터 안에 저장되었던 것들이다.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와르르 태어나/잠시 서로 어리둥절해하네/4월 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4월과 아침’)

‘후두두두둑-/뜰을 두들기는 빗소리에/동과 서/남과 북/사방으로 튀는/깝죽새의 울음’(‘빗소리’)

‘잎이 가지를 떠난다 하늘이/그 자리를 허공에 맡긴다’(‘나무와 허공’)

‘배추김치를 텃밭 한구석에 묻고/파김치를 그 옆에 묻고/언덕에서는 잡목림 밑에 발자국을 묻고 있는 지빠귀’(‘겨울 b’)

이 짧은 시편을 쓰기 위해 수년이나 퇴고를 거듭했다는 뒷얘기는 놀랍다. 사물에 해석이나 관념을 더하지 않는다는 ‘날이미지’ 시론이 종종 선시(禪詩)로 오해받던 터라, 그는 ‘두두’를 통해 ‘날이미지’의 극단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 엄정하고 간결한 시집 한장 한장에는, 오직 시에 대해서 한없이 투철하고 명징하기를 소망하던 생전의 시인의 모습이 겹쳐져 읽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사실 그의 문학적 삶이 온전히 그러했다. 그는 ‘한 잎의 여자’라는 시로 사람들에게 유명하지만, 생애 내내 치열하게 고민하던 것은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였다.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서 상품광고 문안을 이은 시구를 실험하기도 했고, 시집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등에선 생각과 느낌을 깨끗하게 도려낸 시어를 통해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 그것은 한국 시의 주류 문법에 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시적 경향이었다.

2일 오후 4시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예대 드라마센터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소설가 최인훈 씨가 추모사를, 시인 황병승 곽은영 씨 등이 유고 시편을 낭송한다. 시인 황인숙 장석남 박형준 이원 씨, 소설가 신경숙 강영숙 천운영 윤성희 씨 등 그가 서울예대 교수 시절 길러낸 많은 문인이 참석할 참이다. 이들은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한 ‘오규원문학회’도 출범시킬 예정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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