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머리 받들던 습성탓
작품 속의 얼굴은 분명 개다. 그런데 이상하다. 쇼핑을 나온 듯 똑바로 서서 손에 명품 가방을 들고 있다. 입고 있는 옷도 사람의 것이다. 얼굴도 왠지 사람을 닮은 것 같다.
왜 이 개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하지홍 경북대 유전공학과 교수, 전찬한 삼성에버랜드 치료도우미견센터 선임훈련사가 모여 그 수수께끼를 풀어 봤다.
○ 인간과 가장 먼저 친해진 동물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먼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개의 모습을 많이 찍었어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개 신부가 좋은 사례죠. 개를 이용해 세상을 풍자한 거예요.”
이명옥 관장은 다양한 미술 작품에서 인간의 정서를 닮은 개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의 세계에서 개가 다른 동물과 많이 다른 점이다.
웨그먼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개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먼저 인간과 가까워지고 가축이 된 동물이다. 개는 마치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의 어떤 점이 이 같은 ‘가축화’를 이끈 걸까.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개의 두개골은 1만4000년 전 것이에요. 늑대가 사람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개로 길들여졌다는 학설이 과거에 유력했어요. 그러나 DNA를 분석해 보니 개가 10만 년 전부터 늑대에서 갈라진 것으로 나와요.”
하지홍 교수는 “오래전에 ‘개 같은 늑대’가 먼저 태어났고 이들이 인간을 선택했다”며 최근 주장을 소개했다.
전찬한 훈련사도 “개는 무리를 짓고 서열을 정하는 본능을 갖고 있고 이 점 덕분에 인간과 친해졌다”고 강조했다.
“개의 집단에서는 우두머리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면 손해를 보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 있어요. 그 때문에 개가 주인인 인간의 눈치를 잘 알아채는 거죠.”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 개가 원숭이보다 인간의 눈치를 더 잘 알아챘다고 한다.
○ 요즘 개 훈련시킬 땐 강압보다 생각하게 만들어
참가자들은 조선 왕족이었던 이암이 16세기에 그린 ‘모견도’를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큰 개의 얼굴 방향을 보세요. 강아지의 얼굴 방향과 엇갈리고 있어요. 거기에다 강아지 한 마리는 어미 개의 품을 파고들면서 그림에 생동감을 줍니다. 이런 묘사가 걸작을 만든 거죠. 이암은 동물화를 전문 영역으로 개척해 뛰어난 그림을 남겼어요.” 이 관장의 설명이다.
하 교수는 그림에서 개 목걸이에 주목했다.
“500년 전 조선 초기에 저렇게 화려한 개 목걸이가 있었다는 것이 놀라워요. 우리가 얼마나 개를 사랑하는 민족인지 보여 주는 그림이죠.”
전 훈련사는 그림 속 목걸이는 주인이 개를 통제했다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과거엔 개를 강압적으로 훈련시켰지만 요즘엔 개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개가 어떤 행동을 해야 자기에게 이익인지 생각하게 해 인간이 원하는 행동으로 유도하죠. 치료 도우미견도 마찬가지예요.”
세 사람은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에 개는 인간에게 야성의 세계를 느끼게 해 주는 매개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관장은 “사이버 세계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털의 감촉 등 따듯한 스킨십을 일깨워 주는 존재가 바로 개”라고 말했다. 하 교수도 “외로움이 가득한 21세기에 개는 과거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끝>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