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지구 꼭대기서 만난 건…‘에베레스트의 작은 거인들’

  • 입력 2008년 2월 2일 03시 02분


◇ 에베레스트의 작은 거인들/고든 코먼 지음·남문희 옮김/556쪽·1만4000원·달리

도미니크는 오늘도 음료와 초콜릿 바를 사 먹는다. 서미트 스포츠 음료와 에너지 바. 배고파서가 아니다. 그 속에 든 글자를 모으기 위해. ‘에 베 레 스 트’ 다섯 글자를.

글로벌기업 ‘서미트’가 주최하는 경품축제는 글자를 다 찾으면 청소년 산악등반캠프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 행사다. 그것도 미국 청소년 산악인 협회 소속 상위 15명과 함께. 그리고 경쟁에 이긴 4명은 진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게 된다.

어렵사리 글자를 모은 도미니크. 하지만 14세에 초등학생 체구인 그가 최종 팀에 들 거라 생각하는 이는 없다. 서미트 회장인 삼촌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등반대에 낀 페리, 실력은 있지만 성격 나쁜 틸트, 그리고 천방지축 소녀 사만다 역시 마찬가지 처지. 그런데 갖은 우여곡절 끝에 바로 이들 4명이 네팔행 비행기를 탄다.

‘에베레스트의…’는 10대들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실제로 2003년 템바라는 16세 네팔 소녀가 등정에 성공했다. 그것도 한 해 전에 왼손가락 2개와 오른손가락 3개를 동상으로 절단하는 실패를 겪고서도. 극한을 향한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다.

산을 타는 10대의 모험이어서 더 힘겹다. 1m를 오르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건 예사. 텐트 안에 피어난 고드름이 녹아떨어지는 ‘쿰부의 눈물’, 폐에 물이 차는 고소폐부종 즉, ‘고산병’을 겪고 나면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린다. 세상의 꼭대기는 지독하게 몰아치는 지겨움과 그것을 견뎌내는 끈기의 싸움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세계 역시 순수하지만은 않다. 잔류와 탈락을 놓고 벌어지는 미묘한 신경전, 등정 자체보다 인기와 돈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언론과 몰래 결탁해 내부 정보를 마구 흘리는 스파이까지. 저 드높은 산이 인생의 축약판이듯, 아이들 역시 그늘진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하지만 해발 8850m의 고도 앞에선 인간은 모두 평등해진다. 고가의 장비도 탐욕스러운 이기심도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으로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에게는 소용이 없다. 동료를 챙겨야 나도 살고, 한 발을 디뎠으면 다음 발을 내딛는 이치. 시신조차 챙기지 못한 동료의 장례식에 어떤 말도 필요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산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아이들은 배워 나간다.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산악인 엄홍길 씨는 말한다.

“좌절을 알게 해 놓고 다시 도전 정신에 불을 붙여 놓는 곳, 누군가를 영원히 품에 안아 버리기도 하고, 어쩌면 나도 그곳에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다시 찾게 되는 대지의 여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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