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35) 씨가 영등포시장에서 나와 10대의 이야기에 도전했다. 영등포시장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줄곧 시장 사람들을 소재로 작품을 써왔다. 그런 그가 시장과 선을 긋고 여학교로 들어갔다. ‘날라리 ON THE PINK’라는 제목부터 ‘날라리스러운’ 새 장편은 여고생들의 이야기다.
‘날라리…’는 작가의 소녀 시절을 회상하는 게 아니라 ‘요즘 10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작가에게는 위험한 시도다. 10대의 일상을 직접 취재하고 감정 이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렸을 적과 너무나 달라진 10대의 모습에서 문학적 의미를 끌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명랑 씨가 묘사하는 10대의 삶은 ‘어른들은 몰랐던’ 세계다. 버스에서 만난 같은 학교 여학생들과 음담패설을 나누던 열일곱 살 정아. 날라리 ‘대가리’한테 찍혀서 끌려가 맞으려던 참에, 간질환자처럼 구르며 위기를 피해갔다. 이 사건으로 버스에 같이 탔던 여고생 5명이 의기투합하면서 소설은 그들의 에피소드를 샅샅이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고생들의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한 입말, 백화점과 한강시민공원, 홍대 앞을 떠돌면서 방황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어른 독자’들이 읽기에 편하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그 속에서 ‘나의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소망하던 내일이다,류의 명언을 책상 앞에 꽂아두는 따위로는 메울 수 없는’ 허전함을 찾아낸다. 그리고 ‘실수와 상처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소녀들을 발견한다. 이 거칠고 솔직한 10대 보고서는 청춘소설일 뿐 아니라, 기성세대가 10대를 이해하도록 돕는 기록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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