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짓밟아라, 그들은 소수자다… ‘거짓된 진실’

  • 입력 2008년 2월 2일 03시 02분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증오가 여전히 뿌리 깊다고 비판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흑인 차별의 상징이었던 남부 연방 깃발을 공공기관에 게양해 논란을 빚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증오가 여전히 뿌리 깊다고 비판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흑인 차별의 상징이었던 남부 연방 깃발을 공공기관에 게양해 논란을 빚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거짓된 진실/데릭 젠슨 지음·이현정 옮김/536쪽·1만9000원·아고라

에드워드 앤토니 앤더슨 씨는 수갑을 찬 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 총을 맞았다. 프랭키 아르주에가 씨는 머리 뒤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아르주에가 씨의 가족은 다음 날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비아냥거리는 전화를 받았다. 앤토니 바에즈 씨는 길거리에서 축구를 하다 목 졸려 죽었다.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흑인이고 경찰이 죽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 말고도 살해된 흑인 이름을 네 쪽에 걸쳐 나열하다 그친 뒤 이렇게 자조한다. “이 명단은 얼마든지 더 길어질 수 있다. …내가 백인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다.”

미국의 사회변혁운동가인 저자는 서구, 특히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에 주목했다. 그러곤 잔학 행위의 책임을 제도와 사회에 돌리며 악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평범한 정상인’들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의 실상을 파헤쳤다.

특히 그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살해당하는 미국 사회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주요 가해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 그들은 자신들의 잔혹행위를 “서양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음모를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믿음으로 포장한다. KKK 단원 개개인은 평범하지만 언제든 극단적 신념에 물든 집단으로 돌변한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 차별의식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착취는 살인 같은 극단적 행위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법과 제도라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격리 정책이 대표적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 매춘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 책은 인종, 출신 국가, 성별, 장애,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 이들의 끔찍한 경험을 들려준다. 우리말 제목은 이 책이 지적한 뿌리 깊은 증오(진실)가 이제 대부분 해소된 것처럼(거짓) 포장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은유했다.

저자의 개인적 단상이 책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여과 없이 표현돼 주제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만한 감도 있다. 그런데도 저자가 파헤친 실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어느 곳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제 ‘The Culture of Make Believe’(2004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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