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상의 모든 밤을 찾아서… ‘밤으로의 여행’

  • 입력 2008년 2월 2일 03시 02분


◇ 밤으로의 여행/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연진희 채세진 옮김/500쪽·1만8000원·예원미디어

《밤은 해방과 자유를 줍니다. 또 어떤 이에겐 불안과 고독을 안겨줍니다. 때론 쾌락과 여흥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밤은 하루의 걱정을 밀쳐둘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미개척지일 수도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밤으로 떠나봅시다.》

모차르트가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에서 표현한 밤은 감미롭다.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은 몽환적이다. 이들 예술가에게 밤은 소중한 창작의 소재였다.

하지만 불면증에 시달린 윌리엄 워즈워스에게 밤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밤이 ‘침대 밑 괴물이 기어 나오는’ 공포의 시간이다.

밤의 의미, 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처럼 사람마다 다르다. 밤이 빚어내는 변주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부를 차지하고 태양에서 빛을 전혀 받지 못하는 기간’이라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식 설명으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밤이다.

캐나다의 시인인 저자는 밤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방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신화, 예술, 문학, 철학,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 의학….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밤’과 관계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주워 담았다. 필요에 따라 불꽃놀이 전문가, 택시 운전사, 성매매 종사자들, 야간 순찰 경찰관도 직접 만났다.

너무 방대한 재료를 버무리는 이런 작업은 자칫 ‘잡탕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우선 주제의 분류가 일목요연하다. 그리고 각 주제에 맞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저자가 시인이어서 감상적인 표현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 책은 밤에 대한 감상문은 아니다. 밤에 일어나는 사회문화적 현상과 밤 시간대 자연계의 현상 등을 해부하고 분석한 글이다.

밤의 시작을 알리는 일몰을 얘기하는 대목부터 폭과 깊이를 아우르는 책의 특징이 드러난다. ‘붉은 태양이 빌딩과 나무 뒤로 빠르게 가라앉는다’는 시적인 표현에서 출발하더니 일몰의 색조가 빨간색 노란색 오렌지색인 이유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지는 해는 중천의 해보다 더 많은 공기층을 통과하기 때문에 붉은색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오후 7시면 박쥐들이 비행에 나서고 밤의 생태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저자는 마치 생물학자처럼 올빼미와 야행성 곤충들의 습성을 들려준다.

오후 9시. 저자는 ‘도시의 밤’으로 탐방을 나선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시민이 동네 술집의 이야기꾼이 되고, 대만의 한 샐러리맨이 가라오케에서 가수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저자는 흥청망청, 왁자지껄한 밤풍경 묘사에 치중하나 싶더니 다시 학구적인 자세로 돌아가 나이트클럽의 기원을 설명한다.

천문(天文)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달에 얽힌 나라별 이야기들이 눈길을 끈다. 남태평양의 마오리족은 달에서 ‘양동이를 든 여자’를 보고 힌두교도들은 ‘토끼’를 본다. 먼 옛날의 중국인들은 달에 ‘여자’와 ‘두꺼비’가 있다고 믿었다.

꿈을 다루는 장에선 37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문서에 나오는 꿈에 대한 최초의 기록부터 시작해 철학자들이 해석한 꿈, 심리학자들이 분석한 꿈을 소개한다.

이 책은 궁금증에 대해 답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우주는 왜 캄캄할까’,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 어떻게 먹이의 움직임을 포착할까’, ‘도시의 야광은 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몽유병은 왜 생길까’ 등.

저자는 밤의 ‘밝은 부분’만 부각시키진 않았다. 밤은 살인범, 스토커, KKK단이 활개 치는 두려운 시간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밤의 ‘어두운 부분’ 가운데 하나로 불면증을 들며 마거릿 대처, 나폴레옹, 토머스 에디슨, 버지니아 울프 등 불면증을 앓았던 위인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책 전반에 흐르는 밤에 대한 저자의 기본적인 시각은 ‘애정’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한마디를 책 말미에 옮겨 놓았다.

‘나는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별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꿈꾸게 한다.’ 원제는 ‘Acquainted with the night’.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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