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숫자 제목의 상혼

  • 입력 2008년 2월 2일 03시 02분


요즘 ‘1%’란 말이 들어간 제목의 책들이 잘 팔린다. 베스트셀러 정상을 달리고 있는 ‘시크릿-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을 비롯해 ‘마이크로 트렌드-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 법칙’, ‘내 인생에서 놓쳐선 안 될 1% 행운’, ‘부동산 부자는 1%가 다르다’, ‘나를 바꾸는 1%의 비밀’,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등.

더 찾아보니 20여 권에 이른다. 모두 실용 및 자기계발서로, 대부분 최근 1, 2년 사이에 출간됐다.

1%라는 말은 상징적이다. 사소한 1%에 주목함으로써 무언가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 1%의 선택받은 소수에 합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제공한다. 1%의 상징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건 숫자의 매력이다.

하지만 매력만 있는 건 아니다. “1%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1%만 기억에 남아 책들이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다. 1% 제목의 책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1%는 일종의 자극이다.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낳는 법. 그 때문일까. ‘단 한 줄의 승리학-세계를 움직이는 0.1%의 성공비결’이란 책도 나왔다. 앞으로 몇 %까지 내려갈지 자못 궁금하다.

‘3분’, ‘3초’가 들어가는 제목도 많다. ‘3분 안에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는 설득’, ‘말 3분이면 세상을 바꾼다’ ‘3초 안에 반응이 오는 카피라이팅’ 등등.

출판계는 숫자 3을 좋아한다. 한국인이 숫자 3을 좋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출판인 한동숙 씨는 여기에 재미있는 설명을 보탰다.

“3분, 3초라는 말이 들어간 책 역시 모두 실용서 자기계발서죠. 요즘 샐러리맨들의 자기계발은 전투와도 같습니다. 3분, 3회전과 같은 다이내믹한 스포츠의 세계가 책 제목으로 활용되어 샐러리맨을 겨냥하는 것 아닐까요.”

책 제목과 숫자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지’, ‘○○장면’ 식의 제목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100가지’와 ‘…100장면’.

가람기획 출판사는 1992년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100장면’을 출간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5년 뒤 개정판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101장면’을 다시 냈다. 100보다 101이라는 숫자가 독자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무렵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가 출간돼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였다.

‘○○가지’의 책은 지식과 정보를 잘게 나누어 알기 쉽게 전해 준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지식과 정보를 너무 단편적으로 분절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지’ 제목은 정통 인문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1990년대 후반 유행했던 ‘○○가지’ 제목의 인문서가 최근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책의 제목. 특히 숫자가 들어간 제목에서 그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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